[제46기 SG배 한국일보 명인전] 인간적인 실수

입력
2023.11.07 04:30
24면
흑 한상조 5단 백 한우진 9단
패자조 2회전 <4>



한국 현대바둑의 일인자 계보는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이상 9단)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압도적인 승률로 일인자 체제를 상당히 오래 유지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를 풍미한 조훈현 9단부터 2010년대를 휘어잡은 박정환 9단까지 대략 10년 주기로 일인자가 교체됐다. 그리고 2020년대에 들어서 신진서 9단이 그 왕관을 이어받았다. 신진서 9단은 현재까지 80% 후반대라는 엄청난 승률로 압도적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독주체제가 과거처럼 10년씩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AI의 등장 이후 선수들 간의 기량 차가 현저히 좁혀졌기 때문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예선에서 신진서 9단과 맞붙은 싱가포르의 캉잔빈이 60여 수까지 5할에 가깝게 버틴 것이 대표적인 예. 인공지능 등장 이후 누굴 만나더라도 긴장을 놓아선 안 되는 시대가 됐다.

한우진 9단은 백1에 끊어 패를 결행한다. 백3은 다소 난해하지만 성립하는 팻감이다. 이때 한상조 5단은 흑4로 응수타진을 날린다. 흑8의 확실한 팻감을 만들겠다는 뜻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악수였다. 흑4는 7도 흑1로 한 칸 뛰어 보강할 자리. 백이 패를 따낼 때 흑3으로 상변을 잡는 팻감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승부 호흡이었다. 실전 백7에 패를 따내자 흑은 하변밖에 팻감 쓸 곳이 없어진 상황. 한우진 9단 입장에선 팻감 개수를 세기 쉬워졌다. 백11은 정확한 활용. 이때 흑은 8도 흑1, 3의 수순을 밟는 것이 AI가 제시하는 최선이다. 그러나 백이 팻감을 쓴 타이밍에 흑1로 팻감을 소비하는 것은 사람이 떠올리기 어려운 착상이었다.

정두호 프로 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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