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물가 상승세에 가구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고물가 부담이 경기 회복세를 제약할 가능성이 커지자 정부는 ‘배추 실장’을 뒀던 이명박(MB) 정부 시절 물가 관리 방식을 11년 만에 꺼내 들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 온 ‘시장 친화적 물가 관리’ 기조와 배치되는 데다, 실효성마저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10월 식료품‧비주류음료 물가 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올랐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해당 지수는 3년 연속 5%를 웃돌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2011년 이후 10년 만이다. 2021‧2022년 식료품‧비주류음료 물가상승률은 각 5.9%였다.
품목별로 보면 같은 기간 당근(33.8%)‧양파(21.5%) 등 채소류는 물론, 가공식품도 20% 넘게 뛰었다. 지난달 기준 우윳값 상승률은 약 14년 만에 최고(14.3%)를 기록했다. 사과 가격도 1년 전보다 72.4% 치솟았다. 식재룟값이 뛴 탓에 음식서비스 물가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피자(11.5%)‧햄버거(9.6%)‧김밥(8.9%)‧라면(8.6%)을 포함한 음식서비스 물가(1~10월)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6.4% 상승했다. 그 여파로 7월 2.3%까지 내렸던 전체 물가상승률도 8월 3.4%→9월 3.7%→10월 3.8%로 상승폭이 확대되고 있다.
먹거리 물가가 뛸수록 저소득 가구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202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소득하위 20% 가구(1분위)가 식료품‧비주류음료(25만8,000원)와 음식서비스(13만1,000원)에 지출한 금액은 평균 약 39만 원이다. 전체 소득에서 세금‧이자를 뺀 처분가능소득(약 88만 원)의 44%에 달한다. 해당 비중은 고소득일수록 낮아져 상위 20%(5분위)에선 14.5%에 그쳤다.
정부가 꺼내 든 물가 불안 진화 카드는 ‘MB식 물가 관리’다. 각 부처 차관에게 물가안정책임관 역할을 맡긴 데 이어,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7개 주요 품목의 담당자를 지정해 물가를 전담 관리하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리 대상은 서민 가구 소비와 직결된 라면과 빵‧과자‧커피‧아이스크림‧설탕‧우유다. 사실상 가격 통제 중심의 물가 관리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앞서 2012년 품목별 책임관 제도를 도입한 MB정부는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에게 배추‧고추‧돼지고기를 맡기는 등 각 부처 1급 공무원이 서민 생활과 밀접한 주요 품목의 물가 관리를 책임지게 했다.
그러나 명분도, 실리도 모두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시장경제를 강조해 온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 어긋난다. 앞서 지난해 5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1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시장 친화적 물가 관리 원칙”을 강조했다. 당시도 물가상승률이 5.4%를 기록하며 상승폭이 확대되던 때였다.
실효성도 의문이 제기된다. 중동 정세 불안, 국제유가 급등 등 대외 요인과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이 최근 물가 상승세의 원인인 만큼 정부가 손쓸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다. 이명박 정부도 52개 생활필수품으로 이뤄진 MB 물가지수를 구성, 가격 관리에 나섰으나 도입 후 약 3년 5개월간 해당 품목의 평균 가격상승률은 20.42%에 달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13.21%)을 크게 웃돈다.
당장 효과가 있다 해도 언젠가는 후폭풍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에서 ‘조삼모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가격을 누른다고 해서 비용 상승 요인이 없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기업들이 눈치를 보다가 한 번에 가격을 많이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