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스이용자위원회는 3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국제뉴스 보도에 대한 평가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최영재 위원장 및 7명의 외부 위원들과 사내 위원인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이 참석했고, 송용창 뉴스룸국 뉴스1부문장과 김성환 논설위원이 함께 했다. 10월에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폭격과 뒤이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전세계 이목이 집중됐다. 한국일보의 전쟁보도는 시각이 치우치거나 문제된 기사가 드물고 외신 출처가 명시돼 있다는 게 대체적 평가였으나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다.
우선 한국 언론 전반의 문제로, 전쟁 기사가 대부분 외국 통신사·언론를 인용한 2차 취재에 머물렀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아미 의원은 알아흘리병원 폭파와 관련, "사실 확인이 어렵다보니 오보와 정정 보도까지 외신을 그대로 인용하는 모습이 아쉬웠다"고 했다. 장민제 위원도 이스라엘 매체가 보도한 '하마스 아기 참수' 논란이 가짜뉴스로 판명된 사례를 들며 외신 보도가 팩트체크에 취약한 문제를 지적했다. 이외에 "인용한 출처의 비중이 중동언론보다 영미언론이 크게 높았다"(박수진 위원) "이스라엘·미국 보도에 비해 팔레스타인·하마스에 대한 보도는 사상자 피해 규모에 국한된 느낌"(장민제 위원) 등 보도의 불균형성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위원들은 현지 접근이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기자가 현장에 있어야 궁금해 하는 것을 보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원석 위원은 "동아일보의 카이로 특파원이 가자지구에서 이집트로 피난 현장을 르포 보도한 것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꼭 특파원을 보내지 않아도 현지인이 찍은 동영상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뉴욕타임스도 이 방식으로 물 한방울이 부족한 가자지구의 비참한 현실을 전하고 있다"고 취재 경로를 다각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스라엘에서 귀국한 한국인 취재도 방법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장한익 위원은 "이스라엘에서 거주하다 열흘 전 귀국한 지인으로부터 들어보니 정부 발표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대사관으로부터 아무 정보도 받지 못한 채 개인적으로 긴박하게 비행기표를 구해야 했고, 한국행 비행편이 끊겨 일본을 경유해 오느라 고생스러웠다더라"며 "정부의 안전 출국 비상체계가 어떻게 가동됐는지 취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직접 취재한 기사들은 호평을 받았다. 박수진 위원은 주일본 팔레스타인 대표를 인터뷰한 '“하마스를 키운 건 이스라엘… 민간인 폭격 중단해야”'(10월 13일 자)와 일본의 이스라엘 전문가 인터뷰 '“이, 지상전 펼쳐도 하마스 궤멸 불가능… 보복전만 격화”'(10월 23일 자)는 "국제 정치나 외교의 이면에 있어 흥미롭고 바람직한 보도"라고 했다. 장한익 위원은 이스라엘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에 대한 보도가 부족했는데 성직자 인터뷰로 현지 사정을 전한 '"예루살렘 인근은 지금도 폭음 펑펑… 슈퍼는 사재기로 동났다"'(10월 10일 자)를 좋은 기사로 꼽았다.
외신 인용에 의존하다 보니 복잡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사안에 대한 한국일보만의 관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됐다. 장민제 위원은 "기자 개개인의 시각이 더 많이 드러나고 한국일보의 통일된 보도 방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소희 기자의 기사에선 이스라엘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김현종 기자 기사에선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시선이 드러난다. 권경성 워싱턴 특파원 기사는 바이든 대통령에 비판적인 논조다. 기사 방향을 통일할 필요는 없지만 독자에게 어떤 해석의 틀을 제공할지에 관한 내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지지” vs “테러 정당화 안돼”... 전쟁 불똥 튄 대학가'(10월 14일 자)도 관점 부재를 보여준 사례로 꼽혔다. 박경미 위원은 "기사는 팔레스타인 지지와 테러 정당화를 둘러싼 대학가 논란을 잘 보여줬는데 제목에서 '전쟁 불똥 튄 대학가' 표현은 이러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고 했다. 송 부문장은 "보도의 초점을 어디에 맞출지 내부에서 논의한 결과 전쟁의 비극성과 참혹함에 초점을 두고 기사에 반영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 논설위원은 "논설위원실에서도 친이스라엘-친하마스의 프레임에 빠지지 않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에 따라 접근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만의 관점을 드러내는 방편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처럼 사안을 지칭하는 용어를 통일할 때 그 의미까지 공개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자는 의견(최 위원)이 있었다. 영국 BBC는 중립원칙을 내세우며 무장세력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표기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혔는데, 공론화가 이어지는 효과를 거둔 바 있다. 박경미 위원은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쟁뉴스와 경제뉴스 비중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반도체 이슈 등 경제적 분석에 대한 기사는 잘 보이지 않았다"는 의견도 개진했다.
복잡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갈등의 맥락과 배경을 설명해주는 접근이 부족하다는 점 또한 개선해야 할 문제였다. 최 위원장은 한국일보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보도는 과거 기준에선 흠잡을 데 없지만 오늘날 뉴스이용자들의 소비행태에 대응하려면 '중계식 객관 보도'를 넘어 맥락과 배경을 아우르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쟁 발발 직후 '이스라엘은 왜 기습당했나' '미국 중동전략의 문제점' 등 심층 보도를 쏟아낸 일본 매체나, 국내 매체 국제전문기자들의 보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한국일보에서는 간헐적으로 외부 필자의 글이 눈에 띨 뿐 중심을 잡아주는 보도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최 위원은 '최신 업데이트' '인질: 이스라엘에서 납치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이야기 뒤의 역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전쟁에 대한 추가 정보를 읽기 쉽게 구분해 제공하는 BBC를 좋은 사례로 들었다. 최 위원장은 "BBC처럼 뉴욕타임스도 '이런 게 궁금하지 않으세요?'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지며 배경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뉴스이용자가 궁금해할만한 전쟁의 맥락을 이용자 감각에 맞춰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영준 위원은 "(하마스의 공격이 시작된) 10월 7일 자 첫 기사부터 하마스, 네타냐후 등 생소한 단어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 전쟁 배경에 대한 깊이있는 설명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그래픽 개선도 필수라는 의견이 이어졌다. 알아보기 쉽고 직관적 형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 위원은 "국제뉴스 보도에서는 전형적으로 지도나 전력비교표가 사용되는데, 수치나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며 "그래픽을 자세히 들여다봐도 글씨가 잘 안보이거나, 내용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챗GPT 개발사가 만든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험해본 그래픽을 소개하면서 일러스트레이션 제작에 활용해볼 것을 제안했다. 키워드 검색시 그래픽이 쉽게 노출되도록 자세한 캡션 설명도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밖에 아쉽거나 뛰어난 기사들이 지목됐다. 이 위원은 '사망자 중 아이들 비율, 가자는 40%, 우크라는 5%…왜 이렇게 다른가'(10월 30일 자)에 대해 "피해자를 조명한 기사이고 제목도 호기심을 갖게 해 눈길이 갔지만, 가자지구에서 어린이 사망이 많은 원인을 높은 합계출산율 때문이라고 단순화한 것, 기사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보는 거의 언급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고 했다. 조 위원은 "아이를 많이 낳아서 아이들 희생이 많다는 설명은 굉장한 왜곡이 될 수 있다"며 "이번 전쟁은 정규군(이스라엘)과 비정규군(하마스)이 민간인을 타겟으로 싸우고 있다는 이례적인 특성을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기자칼럼 '‘아부왕’ 네타냐후는 또 어떻게 기록될까'(10월 12일 자)를 전쟁 배경의 내밀한 부분을 들여다 보게 한 빛나는 글이라고 호평했다. "오바마 자서전을 인용해 네타냐후가 2006년 오바마 상원의원 당선 때부터 접근한 점 등 짧은 글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 보도 외 다른 국제 기사에서는 '뜨거운 바다, 인도태평양' '일대일로 10년' 등 기획기사에 후한 평가를 내렸다. 인도태평양 기획은 대만, 미국, 일본, 호주 등을 방문해 르포형식으로 보도했다. 최 위원은 "군사 전략과 외교 독트린을 풍부하게 취재한 훌륭한 결과물"이라며 "전혀 모르는 내용도 많이 알게 됐다"고 했다. 다만 "첫회가 실린 신문 1면 사진으로 대통령의 환담 모습이 아닌 기자가 찍은 현지 사진이 실렸다면 인도태평양에 집중하는 이유를 더 잘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일대일로 10년'은 10주년을 맞은 중국 일대일로의 성과와 문제점을 다뤘다. '일대일로 라오스 관문 “낍 안 받아, 위안화 내라”' '‘유엔 회원국 80%’ 150여개국 참여했지만... 23개국 파산위기'(이상 10월 17일 자) 등 특파원 취재를 통해 일대일로의 현황을 생생히 전달했다. 박경미 위원은 "좋은 기획이다. 그런데 상대국들의 재정 부담을 부각하는 등 기획 전반에 일대일로의 성과에 부정적인 시각이 느껴진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일대일로 차관은 공여국과 수혜국에 부담을 안기지만 두 국가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형성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대일로의 성과를 국제질서 차원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 하원의장 해임 뉴스('초유의 하원의장 축출…미 민주주의 ‘치명상’'·10월 5일 자)에 대해서도 박경미 위원은 "비토제도가 존재하는 게 더 민주적이라고 볼 수 있는 만큼 제목에 하원의장 탄핵을 '치명상'이라 표현하는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개인 선택권 침범한 미 대법 '임신중지권 폐지'... 대선판 흔들 또하나의 변수'(10월 16일 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기획기사였으나 '공화당=자유' vs '민주당=선택' 구도로 보는 건 논리적 모순으로 보인다. 임신중지 제한은 보수가 지지하는 전통적 가치라는 점, 최근 임신중지를 제한한 주가 늘고 있는 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를 짚을 필요가 있다"(박경미 위원)는 지적이었다.
또한 지난달 보도된 좋은 기사로 이태원 참사 1주기 기획이 꼽혔다. 이 위원은 "사회적 참사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한다"며 "이태원 참사 1주기 기획이 유가족 근황, 트라우마, 제도적 측면까지 골고루 다루고 외국인까지 짚어준 점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다만 "여론조사 그래픽이 단순 나열식이라 가독성이 떨어졌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이 기획 가운데 '4월의 엄마가, 10월의 엄마에게'(10월 27일 자)에 대해 "세월호 희생자의 엄마가 이태원 희생자의 엄마에게 보내는 공감과 위로의 편지가 독자에게 절절히 전해져 사회적 공감을 형성하게 했다"고 평했다. 최 위원은 '수원 임대왕 추적기'(10월 24, 25일 자)기획에 대해 "2021~2022년 한국일보가 전세사기를 집중 보도했었는데, 이번에 수원지역의 수법, 결탁, 문제점을 꼼꼼히 후속 취재한 점이 인상적"이라고 칭찬했다.
반면 '직원 통계 시스템 조작...까맣게 모른 통계청'(10월 26일 자) 등 전 정부의 통계 조작 보도에 대해선 아쉬운 면이 지적됐다. 최 위원장은 "감사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기사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통계 모델의 수정’을 두고 ‘시스템 코드 조작’으로 단정하는 감사원의 범죄 프레임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