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가 3.8% 오르며 상승폭이 더욱 확대됐다. 하반기 들어 하향 안정화할 거라는 정부 기대와 달리, 3개월 연속 뛰면서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수출 개선에 따른 경기 회복세를 고물가 부담이 짓누르면서 하반기 경기가 다시 고꾸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각 부처 차관을 물가안정책임관으로 지정하며 총력 진화에 나섰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8% 올랐다. 이상기후로 농산물 가격이 뛴 데다,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 등 대외 여건 악재까지 겹치면서 3월(4.2%) 이후 7개월 만에 최대로 상승했다. 7월 2.3%까지 내려왔던 물가상승률은 8월 3.4%→9월 3.7%→10월 3.8%로 오름폭을 키우고 있다.
실생활과 밀접한 장바구니 물가가 일제히 올랐다. 농축수산물 상승률(7.3%)은 전월(3.7%)의 두 배 가까이 뛰었고, 농산물(13.5%)은 2021년 5월(14.9%) 이후 2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상저온으로 출하가 늦어지면서 가격 불안이 커진 탓이다. 아이스크림(15.2%)과 우유(14.3%), 빵(5.5%) 등을 포함한 가공식품 가격도 4.9% 상승했다.
휘발유‧경유 등 석유류 제품 가격 상승률은 1.3% 떨어졌지만, 하락폭은 8월(-11.0%)‧9월(-4.9%)보다 급격히 줄었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석유류 가격 하락폭이 줄어든 게 전체 물가 상승률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며 “다음 달 물가는 국제유가와 환율 등 외부 요인이 많이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세계은행(WB)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력 충돌이 확대될 경우 국제유가가 56~75%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가 낙관론을 자신하던 정부 전망은 빗나갔다. 앞서 7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물가 목표를 3.2%(기존 3.5%)로 낮추면서 “하반기엔 물가 상승률이 평균 2% 중반, 후반대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으나, 10월까지 누적 상승률은 3.7%에 달한다.
물가가 두 달 연속 3%대 오르며 불안감이 확산했던 지난달에도 물가 안정 전망을 고수한 추 부총리는 근원물가 보합세를 근거로 제시하며 “10~11월엔 근원물가 상승률이 2%대에 진입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지난달 3.2% 상승률을 기록, 전달보다 0.1%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쳤다. 결국 이날 추 부총리는 “예상보다 물가 하락 속도가 더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 발 물러섰다.
정부는 이날 물가 안정 방안을 대거 쏟아냈다. 우선 김장철 물가 안정을 위해 배추·무와 고춧가루, 대파 등은 정부비축물량 약 1만1,000톤을 방출한다. 천일염은 역대 최고 수준인 1만 톤을 시중 가격의 3분의 1 수준으로 할인‧공급할 계획이다. 김장재료 구매비용을 지난해보다 낮추기 위해 농수산물 할인 지원에 245억 원을 투입한다. 지난해(138억 원)보다 107억 원 늘렸다. 바나나와 망고, 전지·탈지분유, 버터, 치즈 등 8개 수입 과일과 식품 원료에 대해 신규 할당관세도 적용한다.
그러나 물가 상승 흐름을 전환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제에너지가격 상승과 여러 분쟁 등 대외 여건 악화가 물가를 밀어 올리고 있어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