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였어요. 아이들은 입양 갔고, 저는 이렇게 살고 있어요."

입력
2023.11.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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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 내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백구(흰색 털의 개)의 모습. "공고번호 447511202200435. 모든 걸 내려놓은 것 같다. 어미를 데려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글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10초가량의 짧은 영상이지만 조회수는 무려 49만6,000회에 달한다. 몸집이 15㎏에 달하는 진도믹스견이 보호소를 나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덕분인지, 해당 개는 기적적으로 입양 가족을 만났다.

이 같은 기적을 만들어낸 이는 민간 동물단체도 개인 인플루언서(유명인)도 아니다. 경북 상주시가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다. 지방자치단체 보호소라고 하면 환경이 열악하고, 폐쇄적이고, 입양률도 낮을 것 같은 편견이 있고, 실제로 그런 곳도 많다. 반면 상주시 동물보호센터는 이러한 편견을 보란 듯이 깨트리고 있다.

안락사 제로, 입양은 300건 이상

상주시 동물보호센터의 SNS 팔로어는 1만2,000여 명. 가슴 시린 사연으로 눈물을 쏙 빼는가 하면 극강의 귀여움으로 흐뭇하게 하는 글과 영상에 사람들은 울고 웃는다. 센터가 다른 지자체 보호소와 다른 점은 또 있다. 2021년부터 치료불가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락사를 하지 않고 있다. 2019년 173건에 달하던 안락사 건수는 2021년 7건, 지난해 4건, 올해 9건(10월 기준)으로 현저히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100마리대였던 입양 수는 348건, 307건, 192건으로 크게 늘었다.

센터의 변화는 이상원(44) 상주시 축산과 주무관이 2019년부터 유기동물 보호 업무를 맡으면서 시작됐다. 이 주무관은 동물수집꾼(애니멀호더)에게서 방치견 구조부터 지자체 첫 유기동물 ‘딜리버리’서비스, SNS를 통한 적극적 홍보까지 입양률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주무관에 따르면 안락사 제로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2020년 7월 센터가 동물수집꾼으로부터 158마리의 개들을 구조한 사건이다. 그는 피해 다니는 동물 수집꾼에게 소유권 포기를 설득시키기 위해 5개월간 동물이 있는 주택 주변에 잠복하기도 했다. 그는 "동물이 처한 현실이 암담한 것을 처음으로 몸소 느꼈다"며 "구조한 동물들을 안락사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커 입양 홍보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방치견 입양 독려를 위해 마리당 40만 원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일부 지원자에게 수가 몰리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주무관이 문제를 정면 돌파하면서 그해 300마리가 넘는 유기동물을 입양 보냈지만 관계자와 시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2021년에는 유기견 입양을 원하는 시민에게 개를 데려다주고, 입양자는 바로 입양하거나 2주 동안 임시보호를 한 뒤 입양을 선택할 수 있는 '유기동물 딜리버리 서비스'를 도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유기견 입양을 활성화하는 한편 직접 동물이 생활할 환경을 확인하고, 교통편 확보가 어려운 입양 희망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딜리버리'라는 표현 자체가 물건 배달을 연상시킨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이 주무관이 입양 홍보를 위해 가장 주력하는 것은 SNS다. 영상 작업은 모두 이 주무관과 센터 직원이 직접 한다. 그가 한 달에 SNS에 쓰는 휴대폰 데이터 용량만 40~50기가바이트(GB)에 달한다.

입양 홍보 영상의 특징은 "유기견들은 다 냄새나고 못생겼대요", "저는 이제 반려동물로서 가치가 없어요", "우리는 어른이 되었어요" 등 대부분 유기견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 못 하는 동물들을 대신해 그들의 말을 전해주자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글을 쓰다 보면 아무래도 감정이입이 돼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마당개 입소 줄이고 인력 확보가 과제

하지만 유기견 입양보다 중요한 것은 입소 자체를 줄이는 데 있다. 상주시의 특성상 보호자가 버린 동물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고양이 수도 많지 않다. 보호자들은 대부분 마당에서 중성화를 하지 않고 개를 풀어 키우고, 개들이 집을 나와도 찾지 않고, 떠돌이가 된 개들이 새끼를 낳으면서 보호소로 들어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위해 상주시는 마당개 중성화 사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 참여율은 높지 않은 실정이다. 한편 지난달 5일부터 경북 동물보호 및 관리조례가 개정되면서 읍면 지역에서도 동물등록이 의무화됨에 따라 유기견 수가 줄어들 것으로 시 측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센터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근무할 인력이 부족하다. 센터 운영 및 마당개 동물등록 지도와 감독을 위해서도 인력이 필수지만 현재 상주시 내 동물보호 전담 인력은 이 주무관 혼자다. 센터 내 환경도 열악한 편이며, 수용하고 있는 218마리도 적정 개체 수를 넘어선 상태다. 내년에 이곳에 새로운 동물보호센터를 지을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당장 약 70마리는 갈 곳이 없어진다. 센터가 입양 홍보에 더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주무관은 "유기동물은 보호센터를 나가지 못하면 죽어야만 하는 운명"이라며 "유기동물은 불쌍하고 위험한 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