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축산악취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전문가 회의를 열고 농가 유형별 냄새저감시설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국일보가 지난달 '출구 없는 사회적 공해 악취' 기획시리즈를 통해 전국 악취 민원의 실태를 보도한 이후 나타난 정책적 변화다. 학계도 악취 판정 기준 개선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24일 악취저감방안 전문가 회의를 열었다. 농식품부가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선 본보 보도를 공유하며 축산악취 개선 선진 사례 검토와 향후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농식품부, 축산환경관리원, 한국환경공단 관계자와 외부 전문가 등 12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국내 악취저감기술이 일정 수준까지 개발돼 있으나, 농가별 현장 여건에 맞는 시설 운영이 미흡해 기술의 확산이 더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축산악취저감시설의 설계표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 참석자는 "지금까진 각 농가들이 임의로 저감시설을 설치해 왔지만, 앞으로는 시설의 규격을 정하고 축종별로 유형화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악취를 줄이는 농가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농식품부는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하고 회의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악취 민원 해결이 어려운 데는 전문가가 부족한 탓이 크다. 국내엔 악취 관련 자격증이나 전문 교육과정 등이 없다. 반면 악취 관리 선진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냄새향기협회가 주축이 돼 '취기판정사'를 국가공인자격으로 관리하고, 취기판정사협회가 관련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관련 기사 ☞ 일본 악취 관리의 핵심, 국가 자격 '취기판정사').
일본 악취 관리 제도를 소개한 본보 기획 이후 한국냄새향기학회는 악취 관련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준비에 착수했다. 관련 논의를 이끌고 있는 유미선 울산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악취 진단업, 공공 악취시설 근무자, 공무원 등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내년부터 본격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교재를 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보 기획이 짚은 악취 판정 과정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도 학계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특히 법이 규정하고 있는 악취 실측 방법인 '공기희석관능법'(코로 냄새를 맡아 악취 수준을 판별하는 방법)을 적용할 때 악취 판정 기준으로 쓰는 '희석배수'가 냄새 농도가 낮아 보이게 하는 맹점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유 교수는 이 때문에 "같은 농도의 악취인데도 한국식으로 계산하면 상대적으로 더 약한 것으로 판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참에 기준을 바꾸자는 견해도 논의가 시작됐다. 김만구 강원대 명예교수는 "현행 희석배수는 농도로 관리되다 보니, 코로 맡는 악취에 대응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코가 느끼는 정도를 반영하는 새로운 악취지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류희욱 숭실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공기희석관능법의 신뢰도, 정밀도를 높일 수 있겠지만 분석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