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세 차례 손잡았다.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자리에서다. 윤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의례적인 악수로 끝났던 과거와 달리 이 대표와 환담하며 소통에 나선 건 취임 이후 처음이다. 뒤늦게 시동을 건 야당과의 협치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 앞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를 먼저 만났다. 윤 대통령이 손을 내밀며 “오랜만입니다”라고 짧게 안부를 건네자 이 대표는 말없이 웃었다. 비공개 환담에선 이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민생 현장이 너무 어렵다”며 “신경 써 정책을 집행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국회 본회의장에서 둘은 시정연설 시작과 끝에 다시 악수를 나눴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정부의 재정운용 기조는 건전재정”이라며 2024년 총지출이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2.8% 증가에 그치도록 예산을 편성했다고 강조했다. 또 "국민 여러분께서 체감하시는 물가는 여전히 높고 장기간 지속된 고금리로 생계비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면서 "정부는 물가와 민생 안정을 모든 정책의 최우선에 두고 총력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연설 중간 “초당적 논의”, “초당적 협력”, “초당적 합의” 등 재차 야당의 협조를 요청하며 협치에 무게를 실었다. 지난해 시정연설에서 경제악화의 원인을 전임 정부 탓으로 돌렸지만, 이번에는 야당을 비판하는 대목이 없었다. “부탁드린다”는 말도 5차례 반복했다.
민주당도 이전과 다른 분위기로 윤 대통령을 맞았다. 지난해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사전환담, 시정연설, 대통령과 국회 상임위원장단 간담회·오찬에 모두 참석했다. 본회의장 밖에서는 ‘피켓 시위’가 벌어졌지만, 회의장 안에서 민주당 의원이 피켓을 들거나 고성을 지르고 야유를 보내는 장면은 없었다.
대통령은 국회를 향해 ‘경청’의 메시지를, 국회와 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직언을 던지는 정치 본연의 모습도 오랜만에 연출됐다. 윤 대통령은 여야 상임위원장들과 만나 “정부의 국정운영 또는 국회의 의견에 대해 많은 말씀을 잘 경청하고 가도록 하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오찬에서는 “시정연설과 간담회 모두·마무리 발언 등 국회에서 의원님들과 많은 얘기를 하게 돼 취임 이후로 가장 편안하고 기쁜 날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헌법정신과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겠다’는 윤 대통령의 당선 후 소감을 언급하며 “대통령께서 우리 야당에 섭섭한 것도 있으시겠지만, 야당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대통령께서 국회를 좀 존중하는 문제, 야당과 협치하는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아쉬움이 큰 부분도 있다”며 대통령의 잇단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지적했다. 민주당 소속 김민기 국토교통위원장은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거론하며 "대통령께서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