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실 학대' 피해 정아영양
지난 6월 또래 4명에 장기기증
심장 이식한 두 돌 아기 주치의
"비로소 흙 밟고, 또래처럼 지내""아영이 심장은 400일 넘게 병원에 갇혀 지내던 아이가 받았습니다. 다인실 창문을 통해 보던 세상이 전부이던 아이는 덕분에 비로소 흙도 밟고, 집에서 또래 아이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부산 신생아실 학대 사건'의 피해자 고(故) 정아영(당시 4세)양의 심장을 이식받은 두 살 아기의 주치의가 최근 아영이 부모에게 이 같은 내용의 감사 편지를 보냈다. 아영이는 2019년 10월 부산의 한 산부인과에서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생후 5일 간호사가 바닥에 떨어뜨리며 두개골 골절상을 입고 의식불명에 빠졌다. 4년 가까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오다 지난 6월 뇌사 상태에 빠져 심장, 폐, 간장, 신장을 또래 4명에게 선물한 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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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63010150005863)
아영이의 심장을 받은 아이의 주치의 A씨는 편지를 통해 아이의 근황을 전했다. 그는 "돌 무렵 심부전으로 입원해 심실보호장치에 의지해 400일 넘게 병원에 갇혀 지내던 아이"라며 "(입원 후) 450일 지나 병원 밖을 처음 경험한 아이는 모든 걸 새롭고 신기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성인 키 정도의 생명유지장치 줄에 매여 기계로부터 떨어지지 못하고 살던 아이의 기적과 같은 일상은 모두 아영이와 힘든 결정을 해준 아영이 부모님 덕분"이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A씨는 편지에서 의사로서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오래오래 뛸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돌보겠다. 행복한 아이로 클 수 있게 그 부모님이 최선을 다하시겠지만, 세상에 이로움이 되는 선한 아이가 되길 곁에서 돕겠다"며 "아직은 아이지만, 더 자라면 두 사람 몫을 살아야 한다고 감히 부담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아영이를 기억하겠다"며 "아파해하지만 마시고 아영이 만나는 날까지 웃는 날도 많으시길 기도한다"며 편지를 끝맺었다.
장기 기증자와 수혜자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면 안 된다는 규정 때문에 익명으로 31일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한 A씨는 "이식받은 병원 침상이 전부였던, 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던 아기였다"며 "아영이 덕분에 퇴원 후 집에 돌아가 장난감을 보고는 연신 '우와 우와'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아영이 부모에게 편지를 쓴 건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어서였다. 그는 "장기 기증자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딱 하나, 수혜자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며 "아영이의 심장이 어디선가 잘 뛰고 있는 걸 아시면 위안이 되실까 하는 마음에서 재작년부터 기증자 가족들에게 감사 편지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총 세 명의 소아 장기 기증자의 부모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병원에서 많은 뇌사자를 보지만 기증을 결정하는 가족은 정말 소수"라며 "수혜자를 축복하는 마음 하나로 숭고한 결심을 하신 분들께 보내는 감사 편지는 그 심장이 오래오래 뛰게 잘 돌보겠다는 나의 다짐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A씨의 편지는 최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을 통해 아영이 부모에게 전달됐다.
<심장 이식 주치의가 아영이 부모님께 쓴 편지 전문>
아영이 부모님께
저는 아영이의 심장을 기증받은 아이를 400일 가까이 돌본 주치의입니다.
그 아이가 아영이의 심장을 선물받아 기적과 같이 삶을 이어나간 지 10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부모님께서 아영이를 떠나보낸 지 100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소아과 의사이기에 아영이에 대해 수년 전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많이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의사이기에,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가 절대 겪지 말아야 할 사건으로 위독해져서 공분하고 슬퍼했습니다.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길 염원하면서도 아영이가 다시 건강해질 수 없는 참혹한 현실에 가슴 아팠습니다.
제 환자의 심장이식 수술이 있던 날, 아영이가 더 아파져서 병원에 왔고 기증을 선택하셨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기증받는 날만을 하염없이 기다린 제 환자의 가족과 저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영이에게 쓴 편지를 기사를 통해 읽었습니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온 힘을 버티어 줘서 고맙다고 많이 무서울 텐데 용감하게 지내줘서 고맙다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즐겁게 하늘나라 소풍하고 잘 지내고 있어 달라는...
너를 어떻게 떠나보낼지 막막하다는 어머니의 손편지...
그 편지를 읽고 간직하고 있어서, 이리 소식을 전하는 게 늦어진 것 같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너무 죄송해서 편지를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영이 심장은 돌 무렵 심부전으로 입원해서 심실보호장치에 의지해서
400일 넘게 병원에 갇혀 지내던 아이가 받았습니다.
아이가 입원해 사계절이 지나고 두 번째 봄...
여름을 맞이할 무렵 아영이를 통해 생명을 선물받았습니다.
다인실 창문을 통해 보던 세상이 전부이던 아이는 덕분에 비로소 흙도 밟고, 집에서 또래 아이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450일 지나 병원 밖을 처음 경험한 아이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해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은 모두 아영이 덕분입니다.
성인 키 정도의 생명유지장치 줄에 매여 기계로부터 떨어지지 못하고 살던 아이의
기적과 같은 일상은 모두 아영이와 힘든 결정을 해주신 아영이 부모님 덕분입니다.
오래오래 뛸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돌보겠습니다.
행복한 아이로 클 수 있게 그 부모님이 최선을 다하시겠지만,
세상에 이로움이 되는 선한 아이가 되길 곁에서 돕겠습니다.
아직은 아이이지만, 더 자라면 두 사람 몫을 살아야 한다고 감히...부담을 주겠습니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아영이를 기억하겠습니다.
감히...아영이 부모님도 아파해하지만 마시고
아영이 만나는 날까지 웃는 날도 많으시길 기도합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