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든 학생에 레드카드 준 교사 '학대' 인정돼 기소유예… 헌재 "취소하라"

입력
2023.10.31 15:27
8면
헌재 "정상적 훈육으로 볼 여지 있어"

수업 중 소란을 피운 학생의 이름표를 '레드카드' 옆에 붙인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기소유예(혐의는 인정되지만 여러 정황을 따져 기소하지 않는 것) 처분을 받았지만, 헌법재판소는 혐의 인정을 전제로 한 기소유예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교사의 행위를 훈육으로 볼 여지가 있고, 아동학대 혐의를 인정할 정도로 충분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헌재는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 기소유예를 취소해달라"며 교사 A씨가 전주지검 검사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고 31일 밝혔다.

전북 전주시 초등학교 2학년 담임교사였던 A씨는 2021년 4월 20일 교실 칠판 레드카드 옆에 B군 이름표를 붙이고, 수업종료 후에도 B군을 학교에 남겨 약 14분간 교실 청소를 시켰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A씨가 정서적 학대 행위를 했다고 인정해 지난해 4월 기소유예 처분했다.

A씨는 수업시간에 잘못한 아이들 이름표를 칠판의 옐로카드나 레드카드 옆에 붙이고, 방과 후 학생에게 교사와 함께 교실 정리를 하도록 시켜왔다. 교사와 학생 간 약속이었기 때문에 A씨가 매번 명시적으로 지시하지 않아도 학생이 교실에 남아 청소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수업 중 A씨 제재에도 페트병을 비틀어 큰 소리를 내다 레드카드를 받은 B군은 방과 후 교실에 남아 빗자루를 들고 있었고, 이 모습을 본 A씨는 하교 조치했다. 이튿날부터 B군은 등교를 거부하다 6개월 뒤 야경증(수면 중 갑자기 깨어나 공포를 호소하는 증상) 등 진단을 받았고, 학부모가 신고해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B군 어머니는 수차례 담임 교체를 요구했고, A씨는 결국 병가를 냈다. A씨는 "레드카드 제도는 저학년 학생에게 학교생활시 지켜야 할 점을 알려주는 훈육에 해당하고, 실제 아동에게 청소를 시키지 않아 불이익한 처분을 가한 것도 아니다"라며 지난해 8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교육 목적으로 이뤄지는 정상적 훈육의 일환으로 레드카드를 줬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B군은 낙상사고, 학교폭력 피해 등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사건도 경험해 야경증 등 진단이 레드카드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실제 교사가 교실 청소를 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는지에 대한 학생·학부모 등 추가 조사, 레드카드 제도와 아동 진단 사이 인과관계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중대한 수사 미진의 잘못이 있어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달 14일 B군 어머니가 지속적으로 담임 교체를 요구한 행위를 교권침해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대법원은 "반복적 부당 간섭에 해당한다"며 "보호자의 교육에 관한 의견 제시도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유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