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피의 보복', 브레이크가 없다...국제사회 인내심도 '한계'

입력
2023.10.3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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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주 만에 민간인 8,300여 명 사망 
"전쟁법 핵심인 구별과 비례성 원칙 위반" 
"하마스와 민간인 230만 명 분리 불가능" 
유엔 사무총장 "사상자 용납할 수 없는 수준" 
가자 봉쇄·구호품 차단, 병원까지 위협


3주 만에 민간인이 대다수인 8,300명(영·유아와 어린이 3,400명 포함) 살상, 병원·학교 등 비무장 민간시설 공습, 물·식량·전기·연료 공급 중단, 유·무선 통신 시설 공격, 구호품 반입 차단···.

전쟁법이라 불리는 국제인도법이 금지하는 전쟁범죄 행위들이다.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자위권 행사를 명분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빠짐없이 저지른 행위들이기도 하다.

전쟁 발발 24일째인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은 국제인도법을 무시하며 가자지구 지상 공격 수위를 끌어올렸다. 경악한 유엔과 국제형사재판소(ICC), 국제 인권단체들이 국제법 준수와 공격 중단을 호소했지만 듣지 않았다.

① 벌써 민간인 8,000명 이상 숨졌다

가자지구 보건부 등에 따르면 29일 현재 어린이 3,457명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인 8,306명이 숨졌다.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2007년 이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충돌 과정에서 나온 사망자(약 5,400명)를 훌쩍 넘겼다. 지난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숨진 이스라엘인(1,400여 명)의 5배가 넘는다. 부상자는 최소 2만242명이다.

국제인도법은 민간인에 대한 고의적 공격을 금지하고(구별의 원칙), 기대되는 군사적 이익보다 민간인 희생이 과도한 공격도 금지한다(비례성의 원칙). 이스라엘은 두 가지 원칙을 지킬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9일 "이번 전쟁에서 나온 민간인 사상자 규모가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전 세계가 인도주의적 재앙을 목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약 230만 명이 밀집해 사는 가자지구(길이 41㎞, 폭 10㎞)에 이스라엘군은 로켓포만 8,000발 이상을 쏟아부었다. 지하와 민간구역 깊숙이 군사시설을 은폐해 놓고 민간인과 인질 등 '인간 방패' 뒤로 숨은 하마스에 타격을 입힌다는 게 명분이었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28일 "모든 승리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말했다.

국제안보 전문가인 로버트 파페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는 "하마스 대원을 민간인 230만 명과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했다.



② 물·전기·연료 끊더니 통신 두절… "전쟁범죄"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이 세운 높은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 주민들의 자유로운 출입이 불가능해 전쟁 전에도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이라고 불렸다. 물, 식량, 전기, 연료 등을 대부분 이스라엘에 의존했는데, 이스라엘은 전쟁 시작 3일 만에 공급을 모두 끊었다.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민간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 공급을 막아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형태의 공격은 국제인도법에 따라 금지되는 사항"이라고 지난 10일 경고했지만, 이스라엘은 봉쇄를 풀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대대적인 지상전을 시작한 지난 27일 이후 약 34시간 동안은 유·무선 통신이 끊겼다. 공습경보, 구조 요청, 생사 확인, 언론의 피해 상황 보도 등이 불가능했다. 미국 당국자들은 "통신 두절의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가자지구는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전쟁 6개월 전과 지난 24일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전쟁 발발 18일 만에 건물 2만3,947채(전체 건물의 9.2%)가 파괴됐다. 이에 따라 최소 22만5,270명이 살 집을 잃었다. 유엔이 추산한 난민은 100만 명이 넘는다.

지난 21일부터 이집트와 국경을 접한 가자지구 남부의 라파 통로를 통해 구호물자가 반입되고 있지만, 생색을 내는 수준이다. 29일 24대를 비롯해 구호트럭 총 118대 분량의 물자만 보급됐다. 한계에 몰린 주민들은 약탈을 시작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28일 주민 수천 명이 유엔 구호품 창고에 난입해 밀가루와 비누 등을 빼앗아갔다"며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신호"라고 밝혔다.

카림 칸 ICC 검사장은 29일 라파 통로를 방문해 "구호물자 전달이 어떤 식으로든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이를 방해하면 형사적 책임까지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호품 전달을 막는 행위는 ICC가 다루는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③ "취재 중 기자 '표적 공격'"

취재 중인 기자를 이스라엘군이 표적 공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AP통신에 따르면, 국경없는기자회는 29일 성명을 내고 "피격 당시 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 지대에서 사망한 로이터통신 기자가 이스라엘군의 의도된 폭탄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사망 당시 그는 '언론(Press)'이라고 적힌 헬멧과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다.

기자 살해는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국제법 위반이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지난 9일에도 아랍권 언론 알자지라 기자들이 레바논 남부에서 비슷한 공격을 받아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④ '전시 피란처' 병원, 또 희생양 되나

이스라엘군은 전쟁 중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병원도 공격하고 있다. 국제적십자연맹(IFRC)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29일 가자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알쿠드스 병원에 있는 사람들에게 긴급 대피령을 내렸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아랍권의 적십자사)는 이날 "알쿠드스에 50m 떨어진 곳에 폭탄이 떨어졌다"며 "공격이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병원에는 피란민 1만2,000여 명과 환자 500명이 넘는 환자가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위중한 환자들의 생명을 보호하면서 다른 장소로 대피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며 "병원과 의료진, 구급차 등은 예외 없이 보호돼야 한다고 국제인도법은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인 희생자 급증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30일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어떤 결론이 나든 유엔의 결정은 '정치적 압박'인 탓에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제동을 걸기엔 역부족이다.

권영은 기자
김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