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서 ‘히잡 미착용’ 16세 소녀 결국 사망… 히잡시위 다시 불붙나

입력
2023.10.28 17:19
히잡 단속서 쓰러져 뇌사 후 사망
폭행 의혹에 이란 당국은 ‘부인’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란 ‘도덕경찰’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의식을 잃고 뇌사 상태에 빠진 이란의 10대 소녀가 결국 숨졌다. 지난해 같은 이유로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처럼 이란의 ‘히잡 시위’ 사태가 다시 불붙을지 주목된다.

28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이날 “불행하게도 뇌 손상으로 상당 기간 혼수상태에 빠졌던 아르미타 가라완드(16)가 몇 분 전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가라완드는 지난 1일 수도 테헤란 지하철에서 이른바 도덕경찰로 불리는 지도순찰대의 히잡 단속 과정에서 쓰러진 후 혼수상태에 빠졌고, 지난 22일 뇌사 판정을 받았다.

이란 국내·외 인권 단체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가라완드를 지도순찰대 대원들이 ‘물리적 폭력’을 통해 단속했다고 주장했다. IRNA 등이 공개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가라완드가 히잡을 쓰지 않은 채 친구들과 열차에 올라탔다가 잠시 후 의식이 없는 상태로 들려 나오는 장면이 담겼다.

이란 당국은 가라완드가 저혈압 쇼크로 실신해 쓰러지면서 금속 구조물 등에 머리를 부딪혔다며 폭행 의혹을 부인한 상태다. 가라완드의 부모도 이란 국영 매체에 “딸이 저혈압으로 쓰러졌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인권 단체는 보안 당국 측이 가라완드의 부모에게 압력을 행사했다고 본다. 이란 국영 매체와의 인터뷰에 고위 관계자를 동석시켰다는 의혹도 있다. 당국은 또 진상을 밝힐 핵심 증거인 지하철 내부 CCTV 영상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해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아미니의 의문사와 유사한 만큼 “여성의 히잡 착용 의무를 거부하는 대중의 분노를 재점화할 수 있다”고 AP 통신은 짚었다.

아미니는 지난해 9월 13일 테헤란 도심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에 체포돼 조사를 받던 중 쓰러져 사흘 만에 숨졌다. 유족은 경찰의 고문이 사망 원인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폭력을 쓴 적은 없다며 아미니의 기저 질환이 사인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이후 이란 전역에서는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고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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