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 강화" 강조한 경찰, 정작 '방패 예산' 빠뜨린 채 예산안 제출

입력
2023.10.26 16:24
내년도 예산안서 '방패류' 예산 전액 삭감 
경찰 "정부 예산안에 관련 요구 안 해"
뒤늦게 예산 확보 추진..."안일하다" 지적

최근 무차별적(이상동기) 강력 범죄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경찰이 내년도 예산안에 치안 유지를 위한 필수장비인 방패 관련 예산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현장 치안을 강조하며 기동순찰대 강화를 골자로 한 조직개편안을 내놨지만, 정작 이들이 사용할 방패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2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내년도 예산안 관련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억8,500만 원이었던 현장 장비인 방패류 예산이 내년도엔 전액 삭감됐다. 내년도 예산 중 현장 장비로 분류되는 포승 장비(4,300만 원)와 수갑(1억7,800만 원) 예산은 올해와 동일하고, 호신용 경봉 예산은 올해(1억3,800만 원)에서 3억3,600만 원으로 크게 증액된 것과 대조적이다.

경찰은 방패류 예산이 없으면 신설되는 기동순찰대와 형사기동대가 흉기 난동 등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기동순찰대와 형사기동대 차량(479대)당 3개씩 보급하기 위해서는 총 1,294개가 더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1억3,000여만 원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방패 예산이 삭감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경찰이 추가 예산수요를 면밀하게 살피지 않으면서 내년도 예산안 요구를 하지 못한 것이다. 기동순찰대 등 조직개편 계획을 고려하지 못한 채 기존 조직체계에 맞춘 필요 물량만 확보한 상황에서 예산 요구는 불필요했다는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부안에 별도로 신청하지 않았지만, 기동순찰대와 형사기동대 창설에 따라 추가적으로 확실히 필요해졌다"며 "국회 예산 심의과정에서 증액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이런 태도를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부처의 내년도 예산요구서는 5월 31일까지 기획재정부에 제출된다. 이후 기재부는 개별 부처와 논의를 거쳐 통상 9월 정기국회 시작에 맞춰 국회에 낸다. 지난 8월 한덕수 국무총리의 '치안역량 보강' 언급 이후 경찰의 조직개편 논의가 본격화한 점을 고려할 때, 국회 제출 전까지 예비 수요 파악을 통해 예산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관계자는 "정부 예산안에 아예 포함되지 않은 내용을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확보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경찰의 대처가 안일하다"고 꼬집었다.

정우택 의원은 "치안 확보에 필수적인 장비 예산을 경찰청이 정부 예산안 수립 과정에서 신청하지 않았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앞으로는 경찰청에서 예측가능성을 갖고 선제적으로 소요 제기를 하는 등 적극적인 행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