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가 지난달 깜짝 출시한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탑재된 7나노(㎚·1나노는 10억 분의 1m)급 반도체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장비로 제작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은 중국의 14나노급 이하 첨단 칩 생산을 막기 위해 지난해 필수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차단했는데, 중국이 저성능 장비만으로도 첨단 칩 개발에 성공한 셈이다. 이달 초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수출 제한 품목을 대거 늘린 새 규제를 발표했지만, 중국의 '테크 굴기'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5일(현지시간)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 SMIC가 ASML 장비를 써서 화웨이 최신폰 '메이트 60 프로'에 들어간 7나노 칩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SMIC가 이용한 장비는 지난달까지 중국 수출이 제한되지 않았던 액침 심자외선(DUV) 노광(露光)장비인 것으로 알려졌다. ASML의 DUV에 다른 회사 제품들을 조합해 해당 칩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세계 최대 반도체 노광장비 업체인 ASML은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차원에서 2019년 E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그러나 EUV의 이전 세대 제품인 DUV는 금지 대상 품목에 포함하지 않았다. 중국은 이 같은 빈틈을 이용해 DUV 장비를 사서 개조하는 식으로 제재 극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EUV 장비를 쓰는 것보다 돈이 훨씬 많이 들지만, 중국 정부가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풀이했다.
하지만 내년 1월부터는 DUV 장비도 중국이 수입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이 네덜란드·일본 등과 협의를 거쳐 이달 초 발표한 새 수출 규제안에 'DUV 장비도 통제 대상에 포함한다'는 내용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조치를 예상한 중국은 이미 엄청난 양의 DUV 장비 재고를 확보해 둔 것으로 알려진다. ASML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ASML 매출에서 중국 비중은 46%에 달했다. 1분기 8%, 2분기 24%보다 훨씬 커진 규모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수출 규제 시행 1년을 맞는 10월 전후 빈틈까지 완전히 틀어막는 새 규제안을 발표할 것"이란 소문이 돌자 부랴부랴 장비를 사재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에선 제재 강화 조치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도 높은 제재가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부추긴 것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다.
이번에 강화된 규제가 중국 업체들보다는 ASML 등에 더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중국이 어쩔 수 없이 장비 국산화에 나설 것이란 이유에서다. 블룸버그는 "네덜란드 여당 의원들은 '정부가 미국의 조치에 반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전했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도 제재 확대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적이 있는 만큼, 미국과 네덜란드의 공조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