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약탈한 불상... 대법원이 '일본 소유권' 결론 낸 까닭

입력
2023.10.2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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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절도단이 2012년 대마도에서 훔쳐
서산 부석사 "우리가 원래 소유자" 소송
대법원 "일본 민법상 취득시효 20년 완성"

한국인 절도단이 일본에서 훔쳐 온 고려시대 불상의 소유권은 일본 측 사찰에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고려 때 약탈당한 문화재를 훔쳐 온 것이라 원주인인 국내 사찰도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보관하던 일본 종교법인이 도둑 맞기 전까지 오랜 시간 점유해 민법상 소유권을 갖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충남 서산시)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돌려달라며 제기한 유체동산인도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26일 확정했다. 해당 불상을 제작·봉안했던 고려시대 사찰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지명) 부석사'와 서산 부석사가 동일한 권리주체라고 인정했지만, 오랜 기간 이 불상을 보유했던 일본 관음사에게 불상 소유권이 이미 넘어갔다고 판단했다.

한국인 문화재 절도단 일당 9명은 2012년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 보관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쳤다. 일당은 불상을 국내에 밀반입해 22억 원에 처분하려다 경찰에 적발됐고, 불상은 정부가 몰수해 대전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관했다. 부석사는 "과거 왜구가 고려를 침탈했을 때 약탈당한 문화재이기 때문에 원소유자인 부석사에 반환해야 한다"며 2016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에선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와 현재의 서산 부석사를 같은 곳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불상에서 발견된 결연문의 내용과 고려 역사서 등을 바탕으로 두 사찰의 동일성을 인정했고, 불상이 일본에 의해 약탈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를 서산 부석사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정부는 그러나 서산 부석사를 고려시대 부석사의 후신(後身)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2017년 항소했다

항소심에선 변수가 생겼다. 일본 관음사가 한국 정부 측 보조참가인으로 재판에 참여해 "조선시대 때 불상을 적법하게 물려받아 관음사 법인 설립(1953년) 이후 계속 점유해 취득 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일본 민법상 소유 의사를 갖고 20년간 평온·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점유한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 한국 민법상 부동산 소유권 취득 시효 규정과 동일하다. 2심 재판부는 6년간 심리 끝에 1심 판단을 뒤집고 "서주 부석사를 서산 부석사와 동일하다고 볼 수도 없고, 불상 소유권은 일본에게 넘어갔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사찰의 동일성에 대한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고 봤지만, 불상의 소유권이 일본에게 넘어갔다는 결론은 유지했다. 대법원은 국제사법 부칙 등에 따라 이 사건의 취득 시효 완성 판단 기준으로 '일본 민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봤다. "준거법인 외국법의 적용을 쉽사리 배제하는 것은 국제사법 등 규범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일본 민법 규정이 우리 민법 규정과 거의 동일해 결과에 영향이 없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금동관음보살좌상에 대한 일본 관음사의 취득 시효가 1973년 1월 26일 완성됐고, 불상이 문화재에 해당하더라도 취득 시효 규정이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며 부석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어 "이 사건 불상이 고려 시대에 왜구에 의해 약탈돼 불법 반출됐을 개연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일본의 자주점유(소유할 의사가 있는 점유)라는 추정이 번복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불상을 보관 중인 문화재청은 "법무부 등의 반환 결정이 내려지면 이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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