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1주기] 10월의 엄마에게, 4월의 엄마가

입력
2023.10.26 14:30
1면
[이태원 참사 1주기: ①공감과 위로의 편지]
FROM: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의 어머니 박은희
TO: 이태원 희생자 오지연의 어머니 임은주


10월 29일이 돌아왔습니다. 축제를 즐기던 159명이 다신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날. 1년이 지났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거리를 지키고, 책임은 가려지지 않았으며, 세상은 아직도 안전하다고 말하기엔 멀었습니다. 그날을 '공유'하고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일보의 이태원 참사 1주기 기획은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의 엄마 박은희씨가, 이태원 희생자 오지연의 엄마 임은주씨에게 보내는 공감과 위로의 편지로 문을 엽니다.


10월의 엄마 오지연 어머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4월의 엄마 유예은 엄마입니다. 아이를 잃고 저의 이름은 사라지고 예은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이름을 남길 만큼 유명해지라는 뜻으로만 생각했는데 우리 딸 정말 이름만 남았어요. 이름을 부르는 게 살을 칼로 베어내듯 아프지만 그래도 아이와 연결된 유일한 끈 같아요.

예은이는 4녀 중 2녀로 쌍둥이 중 작은아이입니다. 가수를 꿈꾸며 실용음악학원을 다니다가 열정과 성실함을 눈여겨본 원장님 덕분에 SBS의 청소년 다큐에 출연도 했고, 비록 원하던 예고 진학은 이루지 못했지만 단원고 진학해서 뮤지컬학원에 다니며 꿈을 키우던 아이였습니다. 집에서는 늘 양보하며 엄마와 동생들을 챙기던 착한 아이였습니다.

오지연님 사연은 4·16생명안전공원 5월 예배 순서지를 준비하며 읽었습니다. 2018년 정부합동분향소가 철거되고 야외에서 예배를 이어오고 있는데 올해 3월부터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전체 이름을 낭독하고 3명씩 사연을 읽고 있습니다.

순서지 준비를 위해 오지연님 사연을 미리 읽고 요약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잘하는 것도 많고 그런데 부모님 기대를 생각해 잠시 꿈을 접고 은행 정규직 필기 시험까지 합격했으니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우셨을까. 또 아일 보내고 나서는 하고 싶은 거 더 해보게 해주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마음에 걸리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이 뭐 사달라고 졸라댈 때 늘 "난 괜찮아"라고 말하던 예은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 예은이를 보내고 동생들이 힘들어했기에 혼자 남은 지연님의 동생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오지연님도 예은이도 이렇게 보내면 안 되는 너무 아깝고 사랑스러운 딸입니다.

지난 10년 세월호 유가족들이 길 위에서 잠을 자며 불편해도, 경찰의 폭력에 온갖 설움이 몰려와도, 인간 같지 않은 이들의 더러운 혐오의 말에 상처를 입어도, 믿었던 국가와 정치인들의 배신과 방해에 절망해도 참고 견디며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과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야 세월호 참사는 제대로 기억되는 것이고 그나마 아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책임을 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여러 참사가 일어나면서 눌러왔던 불편함, 설움, 상처, 절망 등이 쓰나미처럼 세월호 유가족을 덮쳤습니다. 넋을 잃고 쓰러져 있다가 5월의 어머니들(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어머니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분들은 몇 번의 고통의 쓰나미를 겪었을까. 세월호를 보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팽목에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현수막을 걸었을까. 그 마음을 헤어리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지난 10년의 시간 중 가장 힘든 시간을 꼽으라면 1주기 때입니다. 2015년 2월부터 부모들은 활동을 줄이고 집에서 잘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늘 북적이던 분향소 대기실조차 적막했습니다. 대신 가정마다 1년 전처럼 곡소리가 났습니다. 아이의 사진과 유품을 안고서 1년 동안 정신없이 싸우느라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연 어머님께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요. 부디 잘 버텨주시라고, 너무 많이 몸과 마음 상하게 하지 마시라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엇보다 하늘과 먼저 간 우리 아이들이 이 일의 되어감을 지켜보고 있고 언제든 함께 힘 모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특별히 세월호 참사 가족들은 끝까지 함께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린 꼭 해낼 겁니다.

4월의 엄마 유예은 엄마.

제가 받은 위로의 마음을 당신께도 드립니다
예은이 엄마 박은희씨는 지난해 11월 한동안 음식을 먹는 족족 게워냈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의 잔상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마주한 이후 극심한 몸살을 앓은 탓이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는데 서서히 그때와 똑같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옹색한 서울광장 분향소 하나 차리지 못하게 하는 걸 보면서 어쩜 더 뻔뻔해졌을까 싶더라고요." 내년이면 10주기를 맞는 세월호 유가족이지만 슬픔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특히나 찬 바람이 가시고 새싹이 돋을 때 마주한 아이의 첫 기일은 숨이 막히도록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노란 리본을 달고 쉴 틈 없이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던 엄마아빠들도 다시 문을 걸어 잠글 정도로, 1주기는 아팠다. 그래서 은희씨는 펜을 들었다. 참사를 겪은 이의 외로움과 무서움을 알기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오지연씨 어머니에게 '함께 하겠노라'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썼다. 그는 매달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기리는 예배에서 이태원 희생자들의 사연도 낭독하고 있다. "연대는 다른 사람의 죽음이 나와 무관치 않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거예요. 다른 이의 억울한 죽음은 어떻게 보면 나를 대신한 거거든요."
최다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