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거취약계층의 주거 이전을 돕기 위해 내놓은 정책 상품이 저조한 실적 탓에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색내기용' 지원이 아닌 시장 환경을 고려해 보다 많은 이용자가 감당할 수 있는 수요 친화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민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2월 31일 출시된 '노후고시원거주자 주거이전 대출 상품'의 실행 건수는 지금까지 단 1건(2,600만 원)에 불과했다.
해당 상품은 고시원 참사를 막기 위해 나온 정부의 후속 조치였다. 2018년 11월 9일 서울 종로구의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는데, 당시 고시원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국토부는 스프링클러 미설치 고시원 거주자를 상대로 임차보증금 5,000만 원 이하 주택은 전액을 연 2.1%의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게 했다.
신청 자격은 3개월 이상 고시원에 거주하고 연소득 4,000만 원 이하 무주택자에게 주어졌으나, 실적이 저조하자 국토부는 상품을 없애는 절차에 들어갔다. 국토부 관계자는 "상품 홍보가 부족했다"며 "대상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비정상거처 이주지원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이 시행돼 수요가 흡수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 3월 발표한 이 정책도 사정은 비슷하다. 실행 건수는 이달 20일 기준 393건에 그치고 있다. 쪽방, 고시원, 여인숙 등에 3개월 이상 사는 무주택자에게 최대 5,000만 원까지 무이자로 대출해주는데, 이 역시 보증금 2억 원 이하·전용면적 85㎡ 이하(1인 가구는 60㎡) 등의 단서가 붙었다.
정부는 지난해 8·16부동산 대책 발표 당시 주거 이전용 무이자대출로 한해 3,000가구 이상 지원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상은 기대치의 13% 수준이다. 이 관계자는 "8월 추가로 3,000만 원을 최대 1.8% 금리로 빌릴 수 있게 한도를 늘렸으나 여전히 여건에 못 미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요층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설계가 실패로 귀결됐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최은영 도시연구소 소장은 "저소득층은 수천만 원의 빚을 지는 것 자체가 부담인 데다, 비닐하우스 등 돈이 안 드는 곳에서 살던 사람은 대출을 받아 거처를 옮겨도 빚이나 그 외 발생할 부수적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탁상행정만 되풀이하지 말고 주거실태를 명확히 진단해 수요자들에게 필요한 상품을 적기에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