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청(구청장 이성헌)이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 설치를 행사 당일 갑자기 불허하기로 해 논란을 빚고 있다. 구청 측은 "사회·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를 댔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는 25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 홍범도 장군 국민 추모 부스 설치하는 과정에서 구청으로부터 장소 사용 불허 공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은 장군의 순국(1943년 10월 25일) 80주기를 맞는 날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부터 28일까지 부스를 운영하겠다고 구청에 신청한 바 있다.
서대문구는 19일자로 작성된 공문을 통해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공원이용객의 불편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공원 이용 질서유지를 위해 장소 사용을 불허한다"고 밝혔다. 해당 행사는 국가보훈부가 후원하고,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주관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불허 결정이 갑작스럽다는 반응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설치에 앞서 구청으로부터 구두로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 이날 오전 8시부터 작업자가 부스 설치를 하려고 했다"며 "그러나 서대문독립공원·형무소 직원이 만류해 20분간 설치물을 실은 차량에서 내리지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9시 30분쯤 구청 공무원들이 독립공원 장소 사용을 불허한다는 공문을 내세우면서 막아섰다"며 "구청 담당자가 깜빡하고 19일 공문 발송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저항을 막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부연했다.
실랑이 끝에 민족문제연구소는 오전 10시부터 부스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매표소 옆하얀 천막 안에 홍범도 장군의 영정사진과 꽃이 진열됐고, 홍범도 장군의 주요 전투를 그려놓은 그림과 그의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방 실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적지에서 추모 부스를 불허하는 건 서대문구청장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구청 직원들은 현장에서 부스 설치를 지켜보다 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공문 고지가 왜 미리 되지 않았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