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친숙하지 않은 바람에 깜짝 놀라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제가 그동안 배워 온 동시대 예술의 핵심이에요."
지난 20년간 공연계에서 동시대 예술을 다루는 현장에는 항상 이 사람이 있었다. 김성희(56) 옵/신 페스티벌 예술감독은 페스티벌 봄(2007~2013년),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2013~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프로그램(2017~2018년)을 거쳐 2020년 시작한 옵/신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전위적 해외 최신 공연예술을 국내에 소개하는 큐레이터 역할을 해 왔다. 그가 중개한 새로운 예술 형식은 국내 공연계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2009년 페스티벌 봄을 통해 독일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다큐멘터리 연극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자본론)'이 소개된 후 국내 예술계에서도 다큐멘터리 연극이 다양하게 시도됐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옵/신 페스티벌 사무국에서 만난 김 감독은 "동시대 예술이 왜 친숙하지 않냐고 묻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 현대 예술가들은 작품을 어떻게 하면 낯설게 보이게 만들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며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게 예술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예술가에게 이해하기 쉬운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김 감독은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 프랑스 안무가 제롬 벨, 이탈리아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 등 중요한 당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다. 그는 올해 4회째로 31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열리는 옵/신 페스티벌에서 이들 예술계 거목들의 회고전을 연다. 옵/신 페스티벌은 '장(Scene)을 벗어난다(Ob)'는 이름처럼 연극, 무용, 영상, 설치 등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드는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동시대 예술을 선보이는 축제. 올해는 11개국 19개 작품을 서강대 메리홀, 송은, 콘텐츠문화광장, 수림문화재단 김희수아트센터, 서울대 제1파워플랜트 등 서울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김 감독이 올해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으로 첫손에 꼽은 공연은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인 태국 영화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열병의 방'이다. 영화 형식을 공연 무대로 확장한 프로젝션 퍼포먼스로, 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을 위해 위촉돼 초연한 작품이다. 윌리엄 포사이스의 신작 '리듬 없이 걸어보기', '자본론'을 오늘날에 맞게 재구성한 리미니 프로토콜의 무대, 스페인 극단 엘 콘데 데 토레필의 '정원에서 숲을 호흡하듯이' 등도 눈에 띈다.
김 감독은 이번 축제를 회고전으로 꾸미는 이유에 대해 "공연예술사적으로 변동이 컸던 시기의 작품을 되짚어 봄으로써 관객과 함께 미래 예술의 방향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함"이라며 "향후 내가 아닌 차세대 기획자가 옵/신 페스티벌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는 선언적 의미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외국에서는 공연계의 주된 흐름인 동시대 예술, 즉 '컨템퍼러리' 신(scene)이 우리나라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죠. '다원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민간 기획자의 헌신에 의존해 명맥을 이어 왔어요. 지난 20년의 결과물을 돌아보면서 이제 미래 세대가 페스티벌 포맷부터 바꿔 동시대 예술의 장을 새롭게 구축해 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