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의 사람들은 생각했죠. ‘일단 떠났다가 1, 2주 후에 집으로 돌아오자’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주민 이야드 쇼바키(45)는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연일 포성이 울리는 가자시티를 떠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의 건국은 팔레스타인 입장에선 대재앙(아랍어로 '알 나크바')의 시작이었다. 72만 명이 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겨났다. 그들의 후손인 가자 주민들은 또다시 ‘영원한 피란민’이 될까 두려워 전쟁터가 된 집을 지키고 있다. 쇼바키는 “집에 머무는 것이 내 나라를 돕는 일”이라고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가자 주민 210만 명 중 80%(170만 명) 이상이 나크바 실향민들의 후손이다. 이들에겐 고향을 떠나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다. 이스라엘이 "무장 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 북부에 지상군을 투입하기 전에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했음에도 수십만 명이 북부에 남아 있는 이유다.
조부모가 1948년 고향을 떠나며 집과 농지를 모두 잃었다는 후세인 하마드는 “다시는 추방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고향이 된 가자 북부 자발리아에서 “이번 위기가 끝날 때까지 버티겠다”고 다짐했다.
이 같은 비극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일대가 주인이 둘인 땅이었기에 시작됐다. 유대인들은 서기 70년 무렵 로마군에게 이스라엘에서 쫓겨나 나라 없는 민족이 되어 세계를 전전했다. 홀로코스트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대 국가를 다시 세우자는 시오니즘이 힘을 얻었고, 당시 팔레스타인이라 불린 지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엔 아랍인들이 1,000년 넘게 살고 있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1947년 두 국가 건설을 보장하는 결의안을 내놨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1948년 일방적으로 건국을 선언하자 유대인을 내쫓으려는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였다. 일방적 승자가 없는 채로 1949년 휴전했고 유엔의 중재로 땅을 분할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에 살던 사람들은 난민이 됐다. 세계에 흩어져 사는 난민과 후손들은 600만 명에 달한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 라시드 칼리디는 1948년 추방의 기억이 생생한 가자 주민들이 “두 번째 이주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남부로 이동하지 않는 북부 주민을 ‘테러 조직의 동조자’로 간주하겠다는 내용의 전단을 뿌리고 공습을 강화하고 있지만, 남부로 떠났다가 북부로 돌아가는 주민들마저 늘어나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피란민이 몰려든 남부의 열악한 현실 때문이다. 고향에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불투명할 바에야 목숨을 걸고 귀향에 나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