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영합주의'로 번역되는 '포퓰리즘'은 대중에게 인기를 끌기 위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통상 부정적인 의미다. 특히 경제가 어렵고 민심이 좋지 않을 때, 상대를 비판하고 쉽게 대중의 공감을 얻을 법한 어젠다를 던지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포퓰리즘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정치인들이 분노의 감정을 결집하는 방법으로 이용하면서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보수·진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이념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 좌파 포퓰리즘과 그에 따른 경제적 좌절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에서는 최근 대선을 계기로 강력한 우파 포퓰리즘 정책이 등장한다. 페론주의로 불리는 대중영합적인 진보정책의 결과로 방만한 재정지출, 무분별한 국가·공공부문 확대 및 과도한 화폐 발행이 이어져 9월 물가상승률 138%, 기준금리 133%에 이를 정도로 경제가 망가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페소화 폐지와 달러화 도입, 중앙은행 폐쇄, 장기 매매 허용 같은 극단적인 반대편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책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보면, 많은 대중이 좋아하는 사안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대중을 기쁘게 하고 그 절차와 수단이 합리적이라면 문제없다. 그러나 포퓰리즘이 문제인 것은 대중을 위한다는 외형적 명분은 있으나 실제 목적은 그렇지 않거나 절차와 수단이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소수 사회 구성원을 분노의 타깃으로 삼아 이들이 극단적인 피해를 보고, 사회 분열을 초래하거나 심지어는 정책 수혜 대상이라는 대중도 결국 손해 보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흔히, 포퓰리즘은 대중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우파는 소수자와 외국인을, 좌파는 엘리트를 대중의 적으로 정의하곤 한다. 2018년 하버드 대학 대니 로드릭 교수는 '포퓰리즘은 필연적으로 나쁜 경제학인가?'라는 연구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포퓰리즘은 경제정책에 필요한 제한과 한계, 또는 정치적 제약 요인들을 무시해 사회경제체제가 독재정권, 권위주의 관료체제, 또는 민주주의지만 대중영합적인 경제 상황 가운데 하나로 전락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포퓰리즘을 막으려면 정책에 대한 정치·경제적인 적절한 제약이 중요함을 지적한다.
다만, 포퓰리즘을 막기 위한 제약이지만 이것이 하나의 규제로서 특정 이해집단의 독점적 이익을 보장하거나 경제 전체에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될 수 있기에 이를 제거하는 것 역시 때로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의 균형재정 이슈다. 대중영합주의에 빠진 방만한 정부지출이나 과도한 공공부문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기에 이를 막는 균형재정 강조는 중요하다. 하지만 균형재정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대중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의 증가로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대공황으로 인한 대중의 경제적 고통이 충분히 관리되지 못하자 독일에서 대중, 특히 독일민족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포퓰리즘의 극단적 형태가 출현해 민주주의를 위협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의 극단적인 포퓰리즘 출현을 막기 위해서는 대중의 수요를 파악하고 이에 화답할 수 있는 정책이 때로 대중영합주의 비판을 받더라도 합리적인 범위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처럼 경기부진에 따른 국민의 어려움이 가중됨에도 인플레이션으로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는 국민 대상으로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실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과도한 포퓰리즘은 경계해도, 지나친 재정경직성이 역설적으로 극단적인 포퓰리즘 출현의 씨앗이 될 수 있음도 생각해 유연한 경기부양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