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잘하는데 무개념인 후배, 일은 못하지만 성실한 후배 중 누구와 일하시겠습니까?"
요새 동년배 기자나 취재원들을 만나면 늘 나오는 화젯거리다. 그때마다 "개념이 없어도 일 잘하는 후배"라고 답했다. 회사생활에서 인성보다는 일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근태가 엉망이어도 자신이 맡은 일을 훌륭히, 아니 무난하게나마 처리해 주는 후배가 더 필요하다고 봤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가 좋은 후배가 더 낫다는 편이었다.
얼마 전 조언을 구하기 위해 한 선배를 만났다. 업무적으로 뛰어날 뿐 아니라 조언, 응원을 아끼지 않아 후배들이 존경하는 선배다. 그 선배에게 위의 질문을 그대로 던졌다. 살짝 미소를 짓던 선배는 "둘 다 중요한 후배야. 하지만 내 인생의 후배를 만들고자 한다면 후자를 택할 거야"라고 말했다.
선배의 설명은 명료했다. 성실한 과정 없이 결과만 내는 후배는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회사나 부서, 동료뿐만 아니라 친구에게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거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순간적인 화력을 불태우긴 하지만, 그것이 군불처럼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 "결과를 보여주니 주변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대신 성실함이나 예의, 배려 등이 없으니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 그래서 자주 이직하는 친구들도 많아. 반면 과정은 늘 성실한데 결과가 안 좋은 후배는 당장은 눈살을 찌푸리게 해도 점점 발전하거든. 미미해도 말이야. 그래서 과정이 무서운 거지, 무시할 수 없는 거고."
스포츠 분야에서 과정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러 선수와 감독들을 대하면서 땀방울의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이달 초 막을 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만 봐도 그렇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1년 미뤄져 5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딘 선수들을 마주하는 순간 결과는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요새 한국 축구대표팀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난 22일(한국시간) 새벽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와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의 얼굴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독일 축구스타 자격의 클린스만 감독이라면 이상할 게 없지만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라는 점에서 씁쓸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독일행을 예고했다. 10월 A매치 2연전(튀니지, 베트남)을 승리로 장식하고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와 이재성(마인츠)의 '코리안 더비' 관전 등의 이유로 출국하겠다고 했다. '원격근무' '근무태만' 등으로 도마에 오른 클린스만 감독은 현재 국내 언론과 축구팬들을 설득하고 있다.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겠다고. 미국 자택과 유럽을 돌며 "K리그 감독이 아니라 국가대표팀 감독이기에 해외 축구를 보고 대표팀에 접목시키겠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잦은 외유는 당연한 거라고. 그러면서 붙이는 조건은 "결과가 좋지 않으면 책임지겠다"는 거다. 다만 그 책임은 내년 1월 카타르 아시안컵까지 유예해 달라는 것. 과정보다는 결과를 지켜봐 달라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과정이 없는 스포츠가 있던가. 스포츠에선 통하지 않는 얘기다. 튀니지전(4-0)과 베트남전(6-0)에서 대승을 거둔 클린스만 감독에게 수만 명의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다. 그래도 여전히 과정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