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수호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10년 넘게 공언해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그가 스스로 장점으로 꼽았던 국가 안보에 대한 약속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영원히 깨졌다”고 미 시사주간 디애틀랜틱이 22일(현지시간) 전했다. 국민을 지키지 못했다는 안팎의 비판이 거세지는데도 네타냐후 총리는 사과 한마디 없이 안보 실책을 외면하고 있다.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네타냐후 총리는 책임은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군(IDF) 군사정보 책임자, 참모총장, 정보기관 수장이 하마스의 공격을 막지 못한 과오를 인정했지만 군 최고 통수권자인 네타냐후 총리만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숨진 이스라엘인은 1,400명이 넘는다.
2021년 6월 부패와 실정으로 물러났던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1월 반(反)이슬람을 표방하는 극우 세력과 손을 잡고 재집권했다. 자신을 견제하는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려다 민심 이반에 직면한 그는 하마스의 공격을 ‘정치적 기회’로 삼은 모양새다. 그가 이끄는 극우 성향 연립정부도 “지금은 적에 대한 단결이 필요하다”며 거들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여전히 권력 연장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 18일 이스라엘을 찾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먼저 사진을 찍기 위해 그가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을 손으로 밀어내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됐다. 지난 15일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의 가족과 만난 것도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엑스(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그가 하마스 공격 피해 현장을 찾을 때마다 "무슨 자격으로 여기 오느냐"고 항의를 받는 영상이 올라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전기를 쓴 이스라엘 언론인 안셸 페퍼는 "네타냐후는 사과를 ‘사표’의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FT에 말했다. 책임을 인정했다가 역풍이 불어 총리직에서 내려오게 될 것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2007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실패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 댄 할루츠 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역시 “이번 사태가 일어난 지 1분 만에 네타냐후 총리는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 후에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쟁 중 총리 교체는 위험이 큰 탓에 반대 정파도 비판을 삼가지만, 전쟁이 수습 단계에 들어간다면 사퇴 압력이 커질 수 있다. 20일 발표된 이스라엘 마리브 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80%가 "네타냐후 총리가 공개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했다. 디애틀랜틱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안보 실패를 주도한 그는 다시는 총리로 선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국가적 위기’가 지도자의 지지율을 끌어올린 사례가 네타냐후 총리에게 적용될 수도 있다. 네브 고든 영국 런던 퀸메리대 국제법 교수는 아랍권 언론 알자지라에 “하마스에 보복해야 한다는 이스라엘인들의 열망이 네타냐후가 앞으로 몇 년간 권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