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걸린 고국 무대 데뷔… '월클 테너' 이용훈의 '네순 도르마'

입력
2023.10.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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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9일 서울시오페라단 '투란도트' 출연
연극·마당놀이 연출한 손진책 첫 오페라 연출도 화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동양적 색채가 강하고, 칼라프가 부르는 '네순 도르마(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말라)'가 널리 알려져 오페라 초심자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반면 다양한 레퍼토리를 접한 오페라 애호가에게는 자칫 진부하게 전달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유수의 극장에서 이 역을 120번 가까이 맡았던 테너 이용훈(50)이 부르는 '네순 도르마'라면 초심자부터 애호가까지 누구나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26~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는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에 대한 기대감이 큰 이유다.

'투란도트'의 칼라프로 한국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는 이용훈은 1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꿈같은 일이 현실화됐다"며 감격에 겨워했다.

이용훈은 서정적 음색과 힘 있는 목소리를 지닌 '리리코 스핀토' 테너로,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 이탈리아 스칼라 극장 등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무대에 서 왔다. 그는 서울대 성악과와 미국 매네스 음대를 졸업하고 메트로폴리탄 콩쿠르 등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잇따라 입상했다. 이후 2007년 칠레 산티아고와 2010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돈 카를로'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국제 오페라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그는 "프로로 데뷔한 지 20년쯤 됐는데 한국에서 오페라 데뷔를 못 했다"며 "기적처럼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1926년 초연된 '투란도트'는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구혼자를 죽이는 투란도트 공주와 결국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다. 이용훈은 테너 신상근, 박지응과 번갈아 칼라프를 맡는다. 그는 2021-2022 시즌 호주오페라 공연과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공연, 2022-2023 시즌 영국 로열오페라 코벤트가든 공연, 최근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페라 공연까지 꾸준히 칼라프로 '투란도트' 무대에 서 왔다. 내년 5월 미국 워싱턴 국립오페라단 공연도 예정돼 있다. 그는 "지금까지 '투란도트'에 110~120회 정도 출연했다"고 말했다.

이용훈은 당초 내년 8월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오페라 '오텔로'로 국내 첫 무대를 예고했다. 때마침 일정이 비게 된 시기에 서울시오페라단과 연이 닿아 10개월가량 한국 데뷔를 앞당기게 됐다. 그는 "보통 연주자는 향후 3~5년간의 일정을 확정해 놓고 활동하는데 안타깝게도 한국은 짧으면 공연 한 달 전, 길어도 1년 전쯤에나 출연 제안을 한다"며 "일정이 이미 다 차 있어서 미뤄진 시간이 20년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독일 드레스덴 공연 중 주어진 2주 휴식기에 가족을 보려고 계획했다가 서울시오페라단장님이 놀랍게 일을 추진하셨다"고 공연 성사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번 '투란도트'는 연극계 거장인 손진책 연출가의 첫 오페라 연출작이기도 하다. 배경의 중국풍을 지우고, 칼라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시녀 캐릭터 류의 헌신에 초점을 맞춘 현대적 재창작으로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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