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합의금 적으니까"... 고의 사망사고 낸 상습 보험사기범 징역 20년

입력
2023.10.23 14:00
고의 사고 내 길 건너던 70대 노인 사망
합의금 등 명목으로 1억7000만원 타내
2009년부터 20건 넘게 유사한 교통사고

형사합의에 필요한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고령의 보행자를 차로 치어 죽게 한 40대 여성이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을 확정받았다. 이 운전자는 이 사건 외에도 고의로 인사사고를 내 보험금을 수령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살인,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42)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20년 9월 전북 군산시 한 도로에서 76세 노인 B씨를 고의로 들이받아 사망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당시 길을 건너던 B씨를 발견하고도 음료수를 마시는 척 차선을 변경하고, 시속 약 42㎞까지 가속 페달을 밟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시간여 만에 숨졌다. 같은날 A씨는 과실로 사고가 난 것처럼 가장해 보험사로부터 형사보상금과 변호사 선임비 등 명목으로 1억7,600만 원을 타냈다.

수사 결과 A씨의 범행은 처음이 아니었다. 2009년에도 A씨는 교통사고로 70대 노인을 사망하게 한 뒤 보험금 3억9,000만 원을 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A씨가 피해자 측에 지급한 합의금은 5,000만 원에 불과했다. 이를 시작으로 A씨는 14년간 20여 건의 유사 교통사고를 내고, 가입한 여러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타내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 피해자가 고령일 경우 비교적 낮은 액수에 합의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범행을 반복한 것이다.

법정에 선 A씨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실수로 사고를 냈다"며 줄곧 살인 고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1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물욕에 사로잡혀 과실 사고로 가장한 뒤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살해하는 방법으로 보험금을 타냈다"며 "유족들과 쉽게 합의에 이를 것으로 기대되는 고령의 피해자를 골라 범행을 저질렀다"고 질타했다.

검찰과 A씨 모두 항소했으나 2심 결론도 다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2009년 교통사고와 경위가 상당히 유사하다”면서 "A씨가 장애인 자여 4명을 돌봐야 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등 딱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범행이 중대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형을 확정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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