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3차 발사 성공으로 각광받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대규모 이직, 기술이전 협상 등을 놓고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선진국 중심으로 펼쳐지는 우주 선점 경쟁 속에서 한국이 밀리지 않으려면 민간기업에 국가 기술을 정당하게 이전해 우주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견해가 주류지만, 한편으로는 특정 기업 몰아주기, 국가 기술 유출 등의 우려가 커서다.
이런 가운데 내년 누리호 4차 발사를 이끌 박종찬 신임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단장은 23일 대전 유성구 항우연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지금의 기술이전이나 연구원 이직이 한국 우주산업의 규모를 키울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역대 가장 큰 규모의 기술이전과 4차 발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박 단장은 2005년 항우연에 입사해 18년간 일해 온 발사체 체계종합 분야 베테랑이다. 그래도 국산 첫 발사체 누리호의 지휘봉을 넘겨받는 것은 중압감이 컸다. 세 번의 발사 중 두 번을 성공했다 하더라도 앞으로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는 데다 네 번째 발사는 큰 변화를 앞두고 있어서다.
변화의 핵심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본격 참여다. 기존 나로호, 누리호 개발은 항우연이 독자적으로 수행해 왔지만, 지난해 말 한화가 누리호 기술을 이전받는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되면서 3차 발사 때부터 협업해 오고 있다. 3차 때는 사업 초기 단계인 만큼 한화의 참여가 참관 수준으로 제한적이었다면, 기술이전이 본격화하는 4차 발사부터는 한화의 역할과 범위가 늘어나게 된다.
박 단장은 "4차부터는 제작·조립·시험·운영 등 전 주기를 공동으로 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4차는 항우연이 조금 더 주도적 역할을, 5차에서는 동반자적 역할, 6차에서는 한화가 조금 더 주도하는 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4차 발사는 3차 때보다 더 무거운 위성을 싣고 우주로 향한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전례 없는 대규모 기술이전이라 안팎으로 혼란도 크다. 국비로 마련한 기술을 민간기업에 이전하는 것이 맞냐는 지적이 계속되는 와중에, 조광래 전 원장을 포함한 항우연 인사 10명의 대규모 퇴사 예고가 불을 댕겼다. 조 전 원장 등 퇴사 처리된 6명은 한화로 이직할 전망인데, 기술이전 협상 종료 전 해당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은 자칫 불공정한 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실제 한화와 항우연 간의 기술협상은 지난 25일 처음 이뤄졌다. 나머지 4명은 기술유출 의혹으로 정부 차원의 감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박 단장은 기술이전은 '뉴 스페이스'(민간이 주도하는 우주산업) 시대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 발사체를 개발할 능력이 있다고 선언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우리 발사체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발사 비용으로 보면 누리호는 스페이스엑스 같은 기업보다 뒤처진 것이 사실"이라며 "효율적 업무 수행에 능한 기업에 항우연 기술을 이전해 고효율·저비용 발사체 서비스를 이끌어낸다면 국내 발사체 산업도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술이전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항우연은 민간이 시도하기 힘든 수소엔진, 원자력추진엔진 등 비용과 인력이 많이 드는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고도 했다. 즉 지금의 기술은 민간에 이전해 더욱 효율화하고, 항우연은 한층 더 도전적인 연구를 하는 '투 트랙'으로 한국 발사체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구상이다.
인력 이동의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봤다. 박 단장은 "이번 이직을 두고 내부에서 충격과 아쉬움이 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반면 고령화하는 항우연에 신규 인력이 들어올 기회가 될 수 있다거나 한국 발사체 산업의 전체적인 덩치를 키우는 역할을 할 거란 기대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낮은 처우가 이직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정부 차원에서 개선 방안을 검토해 산학연 간 원활한 인력 순환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박 단장은 이 같은 혼돈을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봐달라"라고 당부했다. 그는 "기술이전 협상이나 협업 모두 처음 하는 일이라 삐걱거리는 부분도 있겠지만, 발사체 산업의 발전 과정으로 봐줬으면 한다"며 "원활한 협업에 대한 책임이 주어진 만큼 소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