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전력이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발생 후 처음으로 ‘데브리’(핵연료 잔해) 제거 작업을 시도하고 있으나 잇따라 난관에 직면하고 있다. 22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로봇 팔을 2호기에 넣어 소량의 데브리를 꺼낸다는 계획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제2의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
데브리란 동일본대지진 당시 원전 사고로 녹아내린 핵연료 잔해를 뜻한다. 후쿠시마 제1원전 내부에 총 880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모두 꺼내 안전하게 처분해야만 폐로가 완료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24일 오염수(일본명 ‘처리수’) 방류를 개시하면서 그 명분으로 “폐로 작업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원전 사고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쿄전력은 단 1g의 데브리도 꺼내지 못했다. 애초 2021년 2호기 내부에 로봇 팔을 투입해 몇 g이라도 빼내려 했지만,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로봇 팔이 영국에서 제때 도입되지 못해 2023년 하반기로 2년이나 연기됐다.
올해 들어 본격적인 준비 작업이 시작됐으나 난관은 계속됐다. 도쿄전력은 원자로 옆 부분에 나 있는 둥근 구멍과 연결된 통로를 통해 로봇 팔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구멍의 뚜껑을 고정하던 볼트 24개 중 15개가 사고 당시 고열로 눌어붙어 있었다. 원격 조종 드릴로 볼트와 뚜껑을 함께 깎아 내는 작업을 4개월간 한 후에야 지난 16일 드디어 뚜껑을 열 수 있었다.
막상 열고 보니 또다시 ‘예상치 못한 벽’에 봉착했다. 구멍 내부가 회색 퇴적물로 가득 차 막혀 있었다. 원래 있었던 케이블 등이 사고 당시 열에 녹아내려 굳은 것으로 추정된다. 도쿄전력은 일단 고압의 물을 뿜어 퇴적물을 밀어내고 통로를 뚫어 로봇 팔을 투입시키기로 했다. 퇴적물이 딱딱하게 굳어 밀려나지 않을 경우를 대비, 제2의 새로운 도구를 만드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새로운 장비는 기다란 막대기 끝에 데브리 채취 장치를 단 낚싯대 같은 구조다. 2019년 이 통로에 작은 구멍을 뚫어 원자로 내부 상태를 조사할 때도 비슷한 장치가 사용됐다. 그러나 로봇 팔에 비해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좁고, 사람이 설치해야 하므로 방사능 피폭을 피할 수 없다.
결국 꺼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 양은 몇 g 정도에 불과할 전망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일단 성공만 한다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큰 진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량을 시험적으로 꺼내는 것과 880톤의 잔해를 모두 꺼내는 건 전혀 다른 작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8월 말 후쿠시마 이와키시에서 열린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 국제포럼’에서는 데브리 전체 제거를 위한 세 가지 방안이 제시됐지만, 모두 현실적으로 극히 어렵다는 회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도쿄신문은 “원전 부지에 제거한 데브리를 저장할 장소가 부족하다며 오염수 배출을 시작했는데, 그렇게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할 정도로 데브리를 꺼내긴 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