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동산 자산은 두 아들에게만 나눠준다. 딸들은 장남에게 2,000만 원씩만 받도록 해라."
자기 자산을 아들들에게만 주겠다는 내용을 담은 아버지의 '영상 유언장'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정당한 상속 또는 증여 의사 표명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숨진 A씨의 아들 B씨가 형제들을 상대로 낸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에서 B씨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일곱 남매 중 둘째 아들인 B씨는 해외에서 생활하던 2017년 6월 입국해 이듬해 1월 6일부터 8일까지 아버지와 함께 지냈다. A씨는 B씨의 출국 하루 전인 1월 7일 "아들 둘이 땅과 건물을 나눠 가지고, 큰아들이 딸들에게 2,000만 원씩을 주라"는 유언이 담긴 영상을 남겼다. B씨가 촬영한 해당 영상에서, A씨가 무엇인가를 보고 읽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2019년 5월 A씨가 사망한 뒤 B씨는 이 영상을 근거로 땅과 건물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B씨가 촬영한 영상은 유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영상 속에서 A씨가 "유언증서, 유언자 A는 다음과 같이 유언한다"로 시작해 "유언자 A"로 말을 마치긴 했으나, 이외 녹음 유언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법상 녹음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 △유언자의 성명 △유언을 남긴 날짜 등을 모두 말해야 효력이 인정된다. 이 영상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촬영됐다는 증인과 증인의 구술도 필요하다.
해당 영상이 유언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A씨의 재산은 결국 A씨 배우자와 자녀들 모두에게 법정상속분 규정에 의해 배분됐다. 배우자는 17분의 3, 자녀들은 각각 17분의 2씩을 물려받았다.
그러자 B씨는 "영상이 유언으로서는 무효더라도, 사인증여(死因贈與)로 볼 수 있다"며 형제들을 상대로 추가로 자기 몫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사인증여는 증여자의 사망으로 효력이 생기는 일종의 '생전 증여계약'으로, 단독 행위인 유언과 달리 증여를 받기로 한 자의 승낙이 확인돼야 한다.
1심은 "영상만으로는 사인증여를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B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2심은 영상이 사인증여의 '승낙 조건'을 충족했다고 봤다. 촬영 도중 B씨가 "상속을 받겠다"는 등의 대답을 하진 않았으나, A씨가 영상 중간에 B씨에게 "그럼 됐나"라고 말한 장면이 있다는 점에서 "A씨와 B씨 사이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앞서 상속 여부를 두고 다툴 당시 딸들이 B씨에게 '재산 받은 아들 둘이 알아서 하고 딸들한테 뭐라고 하지 마, 그럴 권리 없어'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도 사실상 승낙으로 볼 수 있다는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무효화된 유언을 사인증여로 인정하기 위해선 더욱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B씨가 동석해 동영상 촬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B씨에게만 사인증여 효력을 인정한다면, 재산을 분배하고자 했던 A씨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고 형평에도 맞지 않게 된다"며 B씨 주장을 물리쳤다. 또 망인이 촬영 도중 "그럼 됐나"라고 자문한 것을 원고를 특정해 질문한 행위로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