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당한 ‘해리포터 소녀’와 ‘글자도 못 뗀 소년’...비극은 편을 가리지 않았다

입력
2023.10.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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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이스라엘·팔 민간인 희생
해리포터 좋아하던 12세 주검으로
의사 아버지, 영안실서 막내 찾아

이스라엘의 12세 소녀와 팔레스타인의 6세 소년이 숨졌다. 작은 얼굴 한가득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곤 했던 아이들이다. 두 아이 모두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다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군의 손에 죽음을 맞았다.

전쟁 13일째인 1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나온 희생자는 5,000명 이상.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면 두 아이와 가족들이 겪은 비극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다.

할머니집 갔다 끝내 주검으로… ‘해리포터 소녀’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해리포터’를 좋아하던 이스라엘 소녀 노야 단(12). 노야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빛, 소리, 촉각 등 감각 정보에 예민했지만, 마법사들이 그리는 환상의 세계에는 푹 빠져들었다.

해리포터 속 마법사들이 입는 옷을 입고 지팡이와 소설책을 든 채 마냥 행복해하는 소녀의 사진은 이번 전쟁이 초래한 비극의 상징이 됐다. 하마스에 납치돼 가자지구로 끌려갔던 노야와 할머니 카멜라 단(80)의 시신을 이스라엘군이 찾아냈다는 소식이 19일 미국 CBS 등 외신을 통해 일제히 전해지면서다.

할머니와 가까웠던 노야는 매주 금요일 이스라엘 남부 키부츠 니르오즈에 있는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하마스의 기습으로 ‘피의 토요일’이 된 지난 7일에도 노야는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남은 가족들은 지난 17일 여든 살이 된 카멜라의 생일 파티를 열었다. 카멜라가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대문이다. 유족인 애비 온은 “가족들은 모여 서로를 껴안고 카멜라가 집에 돌아올 것이라고 서로를 격려했다”고 말했지만, 같은 시간 이미 두 사람은 사망한 상태였다.

가족의 슬픔은 끝나지 않았다. 카멜라의 사위인 오페르와 손주 사하르, 에레스는 행방불명이다. 이들만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가족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글자 배우던 막내, 영안실서 조우한 아버지

가족을 잃은 비극은 이스라엘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가자지구 한 병원의 의사인 무함마드 아부 무사는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다쳐 응급실로 밀려드는 환자들을 치료하며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불길한 폭격 소리를 들었다. 무함마드는 “듣는 순간 우리 집 방향이라고 생각했다”고 지난 16일 영국 ITV 뉴스에 말했다.

그의 예감대로 가족이 다친 채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막내아들 유세프(6)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세프는 최근 글자 공부에 여념이 없던 총명한 소년이었다. “제발, 무함마드. 유세프를 찾아줘.” 아내 라완 아부 무사의 절규를 뒤로 한 채 유세프를 찾아다니던 무함마드는 병동이 아닌 영안실로 안내됐다. 싸늘하게 식은 아들의 시신이 거기 있었다.

무사의 가족은 제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기다리며 거실에 모여 있었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가족의 일상을 파괴했다. 라완은 잔해 사이에서 구출되자마자 아이들을 찾았지만, 유세프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병원에서 일하다가 죽은 가족을 마주한 건 무함마드만이 아니다. 아랍권 언론 알자지라 방송은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 시파에서 죽은 채로 실려 온 아버지와 형의 시신을 마주하고 절망하는 팔레스타인 의사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전했다. 이 의사와 무함마드는 가족을 잃은 후에도 다른 사람들을 구하려 병원에 나가고 있다. 매일 수백 명이 죽어 나가는 가자지구에서는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것조차 사치가 됐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