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서울에서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법원을 찾은 세입자가 지난해보다 5배 넘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전셋값이 오름세이긴 하나 고점을 찍었던 2년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 전세금을 돌려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세입자가 적지 않다.
20일 부동산 전문 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국의 법원 임차권등기명령 건수는 3만7,684건에 달했다. 이는 세입자의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건만 취합한 것으로 1년 전 같은 기간(8,755건)보다 4배 넘게 급증한 규모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법원 명령에 따라 해당 부동산 등기에 세입자가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임차권)를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법에선 이미 확정일자를 받았더라도 실거주하지 않으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사라지지만, 임차권이 인정되면 이사를 가더라도 대항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집주인은 새 세입자를 들이기 어려워진다. 등기에 임차권이 기록된 것 자체가 제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뜻이라, 임차권 등기 주택은 세입자들이 일단 거르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대출받아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는 길도 막힌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이었다. 서울은 올 1~9월 임차권등기명령이 이뤄진 건수가 1만2,191건에 달해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섰다. 1년 전(2,533건)과 비교하면 4.8배 급증했다. 서울은 지난해부터 강서구 화곡동, 금천구 독산동, 양천구 신월동 등을 중심으로 전세사기가 쏟아졌는데 이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 다음으로는 경기(9,572건), 인천(7,513건) 순이었다. 대규모 전세사기가 잇따라 발생한 수도권에서 임차권등기명령의 77.7%가 이뤄졌다.
임차권등기명령 건수는 올해 사상 최대 기록을 작성하는 중이지만 내년 초까지 증가 추세를 이어갈 공산이 커 보인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임대차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 세입자가 신청할 수 있는데, 최근 수원과 대전에서 연이어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드러난 점에 비춰볼 때 전세사기 여진이 여전한 탓이다.
임차권등기가 이뤄지면 해당 주택은 전세금반환소송을 거쳐 경매로 나온다. 집주인이 자산 여력이 되면 경매 전 전세금을 돌려줘 불을 끌 수 있지만 경매까지 가면 세입자로선 피가 마를 수밖에 없다. 경매 상황에 따라 전세금을 떼일 수도 있다. 이에 정부는 현재 역전세에 처한 집주인에게 한시적으로 전세금반환보증 대출 문턱(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낮춰 주는 방안을 시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