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35년 만에 부결되었다. 여당은 야당이 대법원장 임명을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다면서 사법부 수장 공백은 야당의 책임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야당은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은 후보자를 지명한 대통령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법부 신뢰 추락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법원의 사건 처리 속도가 현저히 늦어지고 있다. 판사가 재판보다 자신의 워라밸을 우선하고 있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법원장의 권한은 엄청나다. 영미법계든 대륙법계든 법관 인사를 비롯한 법원 행정 업무를 대법원 아닌 곳에서 담당하는 나라가 대부분이고, 법관 인사이동도 거의 없어 한 법원에서 계속 근무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나라의 대법원장은 대법원 재판의 진행, 대법원의 행정 업무 정도만 하는데, 우리나라 대법원장은 매년 1,000명 이상의 법관 인사이동, 법원장 임명 등 수많은 중요 인사의 최종 결재권자이다 보니 제왕적 대법원장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일이니 법원 안팎에서도 대법원장에게 거는 기대가 큼과 동시에 우려도 크다.
사법농단 사건 이후 임명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고등부장 승진제도를 폐지하고 법원장 선거제를 도입하는 등 자신의 인사권 행사를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법개정 이외 제도는 예전 그대로이기 때문에 새로운 대법원장이 과거의 법원으로 회귀시킬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법원의 구성, 법관의 선발에 대하여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외부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법률과 예산의 제한이 있기는 있지만 대법원장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 반면 대법원장이 국민의 요구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법원 이외의 곳에서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사법부 수장이 될 대법원장은 먼저 국민과 법관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분이었으면 한다. 개인적 행복 추구보다 국민을 더 우선순위에 두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마음을 가지신 분이어야 한다. 법원의 수장이므로 법원 판사와 직원에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도 노력하여야 하지만, 그에 앞서 법원이 국민과 공동체 사회에 어떤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분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이러한 소신을 실현해 낼 수 있는 분, 즉 재판과 행정에서 여러 경험을 갖추고 자기 성찰과 고민, 국민과 법관과의 소통을 통하여 법원이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
사법농단 사건 이후 법원 내 문화는 어느 정도 수평적 문화로 바뀌었으나,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예전과 같이 사건 처리를 독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과거로의 회귀는 또 다른 사법농단 사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고 현재 법원이 직면한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여 제도를 개선하여 나가야 한다. 대법원장의 목소리만 높여 나를 따르라는 식의 제도 개선은 부작용만 낳게 될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국민과 법관의 목소리를 경청하여 최선의 방법을 강구한 후 법원 내외로 소통하여 서두르지 말고 긴 호흡으로 제도 개선의 험난한 길을 열어 나가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