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있어 성장"… 삶과 비전 담은 리사이틀 여는 사무엘 윤·김기훈

입력
2023.10.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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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서 데뷔 25주년 리사이틀
바리톤 김기훈 11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서 위그모어홀 데뷔 기념 리사이틀

지난해 '도플갱어'라는 제목의 무대에서 독일 가곡을 함께 들려준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52·윤태현)과 바리톤 김기훈(32)이 1년 만에 각자의 독창회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다시 관객과 만난다. 사무엘 윤은 29일 국제 무대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리사이틀 '프롬 다크니스 투 라이트(From Darkness To Light)'를 연다. 김기훈은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 데뷔(11월 26일)를 앞두고 국내 음악팬에게 같은 프로그램을 미리 선보이는 리사이틀을 다음 달 4일 연다.

사무엘 윤 "참고 견딘 시간이 나를 있게 한 자산"

사무엘 윤은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한국인 최초 주역 가수(2012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를 거쳐 지난해 독일 정부의 '궁정가수' 칭호를 받은 세계적 성악가다. 그런 그가 오페라 가수 생활 25년을 돌아보는 말로 선택한 표현은 '다크니스(어둠)'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음악가로서 인정받지 못했고 내 가능성을 항상 의심했지만 작은 역부터 시작해 참고 견딘 시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사무엘 윤은 서울대 음대를 거쳐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과 독일 쾰른 음악원에서 학업을 마쳤다. 그는 학생 시절을 '미운 오리'처럼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했던 때로 기억했다. 그는 1998년 이탈리아 토티 달 몬테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이탈리아 트레비소에서 샤를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로 데뷔하면서 그제야 스스로 무대를 즐기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런던 코벤트 가든, 베를린 도이치 오퍼, 드레스덴 젬퍼 오퍼, 밀라노 스칼라 극장 등 세계 주요 극장을 누비며 사이먼 래틀, 주빈 메타, 로린 마젤, 크리스티안 틸레만 등 거장 지휘자들과 협연했다.

사무엘 윤은 지난해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된 독일 쾰른 오페라 극장의 종신 가수를 포기하고 귀국했다. 모교인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로 부임하면서다. 그는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내가 주인공인 삶이 언제까지 의미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쓰임받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에 빛이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나를 보여줄 기회가 온다고 믿었다"며 "젊은 성악가들에게도 인내와 기다림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귀국 결정의 또 다른 이유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사무엘 윤은 "소수의 관객만 찾는 클래식 음악이 아닌, 오페라는 물론 가곡을 통해서도 대중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다양한 공연을 시도하고 싶다"고 밝혔다.

29일 공연 프로그램에는 이런 그의 삶과 비전이 담겼다. 1부에서는 슈베르트와 브람스 등 독일 가곡을 들려주고 2부에선 바그너, 베버, 구노, 도니체티의 오페라 아리아들을 부른다. 테너 정호윤이 게스트로 함께한다.

김기훈 "슬럼프는 나를 성장시킨다"

사무엘 윤의 콘서트가 지난 2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라면 김기훈은 앞으로 나아갈 25년의 방향을 제시하는 무대를 갖는다. 2021년 세계적 권위의 'BBC 카디프 콩쿠르 싱어 오브 더 월드' 아리아 부문 한국인 최초 우승자인 김기훈은 우승 특전으로 다음 달 26일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 데뷔를 앞두고 있다.

김기훈은 24일 서울 강남구 복합문화공간 포니정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외국에서 리사이틀을 하는 게 처음이라 긴장되고 준비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며 "BBC 카디프 이후 내 노래를 진득하게 듣고 있는 팬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개인기로 성악가 발성을 흉내 내던 전남 곡성 출신의 평범한 소년 김기훈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뒤늦게 성악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슬럼프를 이겨내며 조금씩 발전하는 계단식 성장의 인생 그래프를 그려 왔다. 군 제대 직후 성대 결절이 생겨 노래를 그만둘까 고민할 정도로 슬럼프를 호되게 겪었다. 2019년 차이콥스키·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각각 2위를 한 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설 무대가 사라져 좌절감이 컸다. 그렇게 두려운 마음을 안고 다시 도전한 게 BBC 카디프였고, 이 대회 우승으로 다시 많은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BBC 카디프 우승 후에도 어김없이 수개월간 슬럼프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BBC 카디프 이후 한동안 노래가 안 됐다"며 "슬럼프를 이겨내려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놓친 게 무엇인지 정리해 부족함을 극복하면서 성장한 나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항상 좋은 성과를 내면 슬럼프가 오는데 슬럼프를 겪을 때마다 성장해 왔기 때문에 다시 슬럼프를 겪는 게 두렵지는 않다"며 웃으며 말했다.

이번 리사이틀은 1부는 브람스의 '4개의 엄숙한 노래'와 한국 가곡인 이원주의 '연'과 '묵향', 조혜영의 '못잊어'로 구성했다. 2부는 라흐마니노프의 가곡으로 꾸민 러시아 성악가 드미트리 호보로스토프스키(1962~2017)를 오마주한 무대다. 김기훈은 "호보로스토프스키와 한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어려서부터 가졌던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라며 "그가 불렀던 노래들로 그를 오마주하며 리사이틀을 꾸미는 자체가 내게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반주는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맡는다.

김소연 기자
문이림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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