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심의 초대형 경제벨트 구축을 위해 시진핑 정권이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 일대일로는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까지 뻗어갔다. 빛과 그림자는 뚜렷하다. 중국의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면서 일부 참여국은 성장 발판을 마련했지만, 중국에 막대한 빚을 지는 바람에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놓인 나라도 있다.
일대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한국일보는 △챈리스 응인 캄보디아 개발자원 연구원 교수 △펠릭스 챙 미국 외교정책연구소 연구원 △자얀트 메논 전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연구원(알파벳 순) 등 전문가들에게 지난 10년간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물었다.
일대일로를 회의적으로 보는 서방 등의 시각에 대해 이들은 “중국이 사업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중국이 대규모 기반시설(인프라) 투자에서 핵심 광물 분야 투자로 방향을 수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인터뷰는 화상과 서면으로 진행됐다.
일대일로가 인프라가 부족한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에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 대해 전문가 3명 사이엔 이견이 없었다. 다만 인프라 건설이 중국과 참여국의 공동 발전 모델이 될지, 참여국을 중국 경제에 종속시키는 덫이 될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응인 교수는 “일대일로가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 성장을 촉진했다”고 평했다. 예컨대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물류비용 절감과 무역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운송 인프라가 절실히 필요했는데, 라오스-중국 철도(라오스)와 프놈펜-시아누크빌 고속도로(캄보디아) 건설을 통해 숙원을 이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삼림 벌채와 원주민 강제 퇴거 같은 문제가 떠오르긴 했지만, 경제 성장 측면만 보면 도움이 됐다고 응인 교수는 덧붙였다. 캄보디아가 인프라 건설 자본을 중국에서 빌린 돈으로 충당한 데 대해 그는 "캄보디아의 외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4.9%(2021년 기준) 수준으로, 국가 성장을 고려할 때 채무불이행 위험은 크지 않다"고 했다.
일대일로가 참여국들의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메논 연구원은 “모든 인프라가 반드시 좋은 인프라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라오스-중국 철도를 예로 들었다. 인프라 건설 사업에 앞서 △꼭 필요한 인프라인지 △재정적으로 감당 가능한 사업인지를 철저히 검토했어야 했는데, 라오스 철도는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모두 ‘아니오’였는데도 중국의 장밋빛 약속만 믿고 사업을 강행했다고 그는 소개했다.
메논 연구원은 “라오스의 이익만 따지자면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는 고속 열차 대신 도로 확충 등의 대안을 택할 수도 있었다"며 "라오스가 GDP의 절반 가까운 돈을 투자할 만큼 여력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철도 건설은 중국에 더 중요했던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의 관심은 ‘또 다른 10년’으로 향한다. 중국이 막대한 대출금을 빌려주고 직접 인프라 건설 사업에 나서는 현재의 방식이 지속될지가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를 변수로 꼽았다.
지난해 말 코로나19 봉쇄를 해제한 이후에도 중국 경제는 침체와 회복 사이를 오가고 있다. 수출이 지난달 전년 대비 14.5% 감소하고 청년 실업률은 21.3%(6월 기준)로 역대 최고를 기록 중이다. 물가상승률도 지난달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각국에 빌려준 대출금 부담이 추가되면 일대일로 사업이 자칫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의미다. 메논 연구원은 “중국 내수 경기침체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자금 조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중국 정부는 국내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 3명은 중국이 지난 10년의 성과를 평가한 뒤 사업 방향을 수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인프라 건설에 치우치는 대신 사업 분야 확장에 나설 것이라는 의미다. 챙 연구원은 “세계 경제 둔화와 대출 부실 위험이 맞물리면서 중국과 참여국 모두 대규모 인프라 투자 선호도가 떨어졌다”며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성장하는 배터리 산업을 장악하기 위해 각국에 매장된 코발트, 니켈 등 금속·광물 채굴과 투자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중단할 가능성에 대해선 3명 모두 일축했다. 일대일로가 중국의 세계 제1위 패권국 등극을 목표로 한 ‘중국몽’ 실현을 위한 핵심 사업인 데다, 시 주석이 주창자인 만큼 포기할 리 없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