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를

입력
2023.10.17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98명, 530명, 1,100명, 3,400명, 4,000명….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충돌로 사망한 이들의 숫자가 자고 일어나면 늘어나는 걸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체념이 자리하게 된다. 15일(현지시간) 기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는 각각 1,500명과 2,670명. 누군가에게는 충격적인 숫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중동의 화약고’라고 불릴 정도로 새롭지 않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다. 피의 토요일이 된 지난 7일 이전에도 팔레스타인에서는 올해 수백 명이 이스라엘에 의해 숨졌다.

그래서인지 양측의 충돌을 다룬 기사엔 유독 ‘불가피하다’는 단어가 자주 들어가곤 했다. 우선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복수가 불가피했다. 또 이스라엘의 복수를 위한 가자지구의 지상전이, 지상전에서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대량 학살이, 대량 학살이 현실화하면 중동 전역으로의 확전이 불가피하다고 연거푸 썼다. 피할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진, 납작하기 그지없는 단어로 이번 전쟁을 설명하면서 생각했다. 무엇이 그리 정말로 불가피했을까.

비행기 직항으로도 꼬박 12시간 넘게 걸리는 낯설고 먼 나라에 사는 이들의 죽음이 벼락처럼 들이닥치는 순간이 있었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숨진 여덟 살 소녀가 반에서 제일 키가 큰, 달콤한 꿀 같은 색깔의 곱슬머리를 가졌음을 알게 됐을 때. 또 평생을 산 집을 떠난 가자지구 어린이가 피란길에 맞은 여덟 살 생일에 유일한 선물로 받은 초코바나, 사망자가 생전 손꼽아 기다렸지만 끝내 열리지 못한 이스라엘에서의 브루노 마스 콘서트 같은 것들을 알게 됐을 때다.

사회적 참사를 다루는 언론이 피해자의 사연을 보도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타인에게서 나와 다르지 않은 일상의 조각을 마주할 때. 전쟁 상황의 불가피한 숫자는 비로소 한 인간의 죽음으로 다가오고 참사는 반복되어선 안 되는 비극으로 자리한다. 천선란 작가는 소설 ‘이끼숲’에서 “죽음은 간략하고 명료하다. 멀리서 보면, 별것 아닌 한 줄이 된다. 그 애를 사랑했던 사람만이 그 한 줄을 뜯어 먹고 살 것이다”라고 했다. 글자와 글자 사이, 선과 선 사이에 촘촘히 박힌 삶을 그리워하면서.

이런 ‘촘촘히 박힌 삶’에,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보복과 공격이라는 피의 악순환을 벌이는 양측은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이스라엘 민간인을 공격하고 인질극까지 벌인 하마스, 보복을 하겠다면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주민 전체에 폭격을 퍼붓는 이스라엘 정부, 양쪽 모두 우선순위가 국민이 아님은 분명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집권을 위해 우파 연정과 손을 잡았고, 선을 넘는 도발로 하마스의 위협에 스스로 불씨를 댕겼다.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더 많이 죽을수록 국제적인 여론전이 유리하다고 보는 하마스는 말할 것도 없다.

하마스의 총격으로 부모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16세의 이스라엘인 마티아스는 참극의 순간 “모든 신에게 기도했다. 어떤 신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고 AFP통신에 털어놨다. 단지 “그들이 나를 찾지 못하기를 ‘모든’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는 그의 기도에서 종교 갈등에 뿌리를 둔 전쟁이 무고한 희생자들에게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절감한다. 세상의 모든 신에게, 죽은 이의 안식과 산 자의 안녕을 간절히 기도해 본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