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등반가가 겪은 조난-사투의 127시간

입력
2023.10.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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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애런 랠스턴

미국인 등반가 애런 랠스턴(Aron Ralston, 1975.10.27~)은 2003년 4월 유타주 블루존 협곡 등반에 나섰다. 대학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인텔사에서 근무하던 중 5년 차에 ‘번아웃’ 증상을 겪곤 곧장 사표를 내고 오랜 꿈이던 콜로라도 1만4,000피트(약 4,270m)급 고봉 59개 동계 단독등반에 나선 그였다. 혼자 안전장비 없이 암벽을 오르는 프리솔로 등반, 급류 래프팅 등 극한 스포츠를 즐기며 자신만만했던 그는 그날도 휴대폰 없이 혼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산행을 시작했다.

좁은 협곡을 내려오던 중 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지면서 오른팔이 협곡과 바위 사이에 짓이겨지며 껴버렸다. 그는 협곡 중턱에 매달려 물 350㎖와 부리토 2개로 만 닷새를 버텼다. 부상 통증에다 영하의 밤 추위, 탈수로 인한 환각증상까지 견디던 끝에 그는 혈류가 차단되면서 부패하기 시작한 오른팔을 스스로 잘랐다. 손전등을 사며 사은품으로 받은 싸구려 만능칼의 5cm 칼날과 작은 펜치로 먼저 살을 자르고 제 몸을 이용한 지렛대 원리로 뼈를 부러뜨리고, 스틱 등으로 지혈대를 만들어 출혈을 억제했다. 그 몸으로 바닥까지 약 20m를 하강, 네덜란드 여행자들을 만날 때까지 9.7km를 걸었다. 구조 당시 몸에는 피가 75%밖에 남지 않았고 몸무게는 18kg이 줄어 있었다. 의료진은 만일 그가 팔을 더 일찍 잘랐더라면 과다출혈로 숨졌으리라 추정했다.

자서전(‘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 ‘127 Hours(2011)’도 만들어졌다. 가디언은 다큐를 방불케 하는 영화 시사회에서 일부 관객이 졸도까지 했다고 소개했다. 사고 전보다 훨씬 겸손해진 랠스턴은 지금도 중단된 꿈-등반-을 하나씩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의수를 단 사고 후의 자신이 이전보다 더 나은 등반가라고 자부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