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이 임박한 가운데 이스라엘군은 1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주민 110만여 명에게 내린 대피령의 시한을 거듭 연장하며 “즉각 떠나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도로 등 인프라 대부분이 파괴된 데다가 이스라엘의 공습이 계속되고 있어서 가자지구 주민들에겐 피란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지상 전면전이 코앞에 닥친 가자지구는 필사의 탈출을 하려는 이들과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이들,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들이 뒤섞여 아비규환의 현장이 됐다.
이스라엘군(IDF)은 이날 하마스 본부가 있는 가자시티를 포함한 북부 주민들에게 “15일 오후 1시(한국시간으로 같은 날 오후 7시)까지 떠나라”고 통보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지난 13일 대피 시한을 두 차례 연기한 데 이어 재차 시한을 늘렸다. 남부로 향하는 도로 2곳을 안전한 피란길로 지정하기도 했다.
조나단 콘리쿠스 IDF 대변인은 “우리가 (대피) 시간에 정말 많이 관대했음을 알아야 한다”면서 “25시간 이상의 충분한 시간을 통보했다”고 미국 CNN방송에 말했다. 그러면서 “민간인이 해당 지역을 떠난 것을 확인하고 중요한 군사작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방탄조끼를 입고 가자지구 접경의 군부대를 찾아 “다음 단계가 다가오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장교들을 인용해 정찰대가 가자지구에 진입했다 철수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대피 시한 연장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고 ‘최적의 반격 시기’를 고르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NYT는 이스라엘이 주말(14, 15일)에 지상군을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전투기 등의 공중 엄호가 어려운 흐린 날씨로 늦춰졌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이 4,000톤 분량의 폭발물이 실린 로켓 6,000여개를 쏟아부어 쑥대밭이 된 가자지구 북부에서는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수만 명이 자동차와 트럭, 오토바이는 물론이고 당나귀가 끄는 수레까지 동원해 남쪽으로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NYT는 “대피령을 따르려는 사람들로 인해 지역이 공황과 혼란에 빠졌다”고 전했다.
국제사회에서는 가자지구 인구 230만 명 중 절반이 일시에 다른 지역으로 대피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생명유지 장치가 유일한 생존 수단인 부상자가 (가자지구에) 많다”며 “이런 중환자를 옮기라는 건 사형 선고”라고 지적했다. 가자지구 보건부 역시 “우리는 계속 일할 의무가 있다”면서 병원 등의 폐쇄를 거부했다.
중환자, 고령자, 임신부, 장애인 등 떠나지 못한 가자의 주민들은 병원과 학교에 모였다. 아랍권 언론 알자지라에 따르면 알 시파 병원 등 가자지구 북부 병원에는 3만 5,000명에 달하는 난민이 몰려들었다. 휠체어를 탄 고령의 여성 파티마(80)는 “누구도 우리를 돕지 않는다”고 절망스러운 심경을 전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대피령을 ‘심리전’이라 일축하고 주민들의 잔류를 주문했다. 일부 주민들은 이스라엘이 건국되던 1948년 전쟁 당시 팔레스타인인이 고향에서 쫓겨났던 ‘나크바(대재앙의 날)’의 재연을 우려하며 버티고 있다. 이스라엘은 영국이 통치하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약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강제 추방했다. 현재 가자지구의 주민 대부분이 추방당한 이들의 후손인 만큼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피란길도 안전하지 않다. 13일 이스라엘이 지정한 대피 경로에서 폭발이 일어나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다. 남부에서도 산발적인 공습이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언론인 하셈(33)은 “남쪽으로 간다고 해도 머물 곳이 없는 데다가 가는 길도 안전하지 않다”며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 군의 표적”이라고 자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