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정감사는 권력기관인 감사원을 견제하는 사실상 유일한 장치다. 하지만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은 정회를 반복하며 파행으로 얼룩졌다. 감사위원이 의원 질의시간에 국감장에 배석할지를 놓고 여야가 다투다 시간만 허비했다. 감사원 관계자가 법사위원장 허락 없이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고성과 비아냥이 오갔다.
이날 국감은 회의 시작 20분 만에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감사 결과 승인 과정에 대해 수사하고 있으므로, 장본인들이 배석해 질의 내용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며 감사위원 배석을 요구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감사원의 진상조사 결과에 대한 질의를 하겠다는 목적으로 감사위원을 배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맞섰다. 정작 중요한 의원 질의는 시작도 못했는데 1시간 넘게 시간이 흘렀다.
이에 민주당은 기자회견을 열고 "일방적으로 국정감사를 정회시켜 파행으로 몰고 가고 있다"며 반발했다. 법사위 간사인 소병철 의원은 "감사원장 스스로 최근 감사원이 감사 결과 심의 의결 과정에서 법과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다"며 "국회에서 당연히 이 부분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추궁해야 하는데, (여당과 위원장은) 무슨 영문인지 회의를 파행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박주민 의원은 "간사들만 나가서 협의하면 되는데, 국민의힘이 그 요구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회시켰다"며 감사방해로 규정했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업무보고에 앞서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 감사와 관련, "최근 감사원 내부의 감사 결과 심의 의결 과정에서 법과 원칙에 충실하지 못한 잘못이 다소 있었고, 내·외부의 수많은 억측과 일방적 주장이 제기돼 국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는 감사원의 잘못을 인정한 게 아니라 해당 감사의 주심위원인 조은석 감사위원이 '법과 원칙에 충실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이었다.
최 원장은 관련 질의에 "(조은석) 주심위원이 계속 열람을 거부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행된 부분이 매끄럽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지난달 조 감사위원에 대해 감사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상태다.
야당의 공세는 '전현희 감사 보고서'에 집중됐다. 감사원이 주심위원을 배제하고 독단적으로 감사보고서를 수정해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권칠승·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감사원의 시스템 수정 이후 조 감사위원이 해당 보고서를 열람하거나 반려할 수 있는 버튼이 사라졌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감사원은 "조 위원이 열람을 하지 않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고, 주심위원이 열람하지 않더라도 다음 단계인 권익위에 대한 시행문을 생성할 수 있도록 전산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부러 조 감사위원을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에 감사원이 답변하는 과정에서 최달영 1사무차장이 법사위원장 허락을 받지 않고 발언하려 하자 민주당은 거세게 항의했다. 소 의원은 "감사원 간부들이 마음대로 나서서 우후죽순 발언하려는 게 개그 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을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고, 박범계 의원은 "말 맞추기를 하면 안 된다"고 공정한 감사 진행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김도읍 위원장은 박 의원에게 "본인 출장 관련 해명이나 잘하라"고 면박을 줬다. 박 의원은 법무부 장관 시절 지출한 출장비를 축소 신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