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은 미국은 물론 싱가포르, 유럽 등 전 세계 벤처투자사(VC)로부터 자금 조달을 한다고 여러 번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웃나라인 일본엔 잘 오지 않는 것 같아요. 아직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이겠죠.”
올해 1월 일본 최초로 결성된 대규모 CVC(corporate venture capital·기업주도형 벤처투자사) 네트워크인 ‘퍼스트CVC’ 대표를 맡고 있는 야마다 가즈요시(39)의 말이다. 12일 일본 도쿄에서 롯데벤처스가 한국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을 돕기 위해 개최한 ‘L-CAMP JAPAN’ 행사장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야마다 대표는 “일본 대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으려 분주하고, 투자 여력도 충분하다”며 “한국 스타트업이 일본 대기업과 만나면 서로에 도움이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반적인 VC는 스타트업 지분에 투자했다가 나중에 기업공개 후 해당 지분을 팔아 차익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벤처투자사인 CVC는 이와 달리, 모기업의 신사업 진출, 또는 기존 사업 개선을 목적으로 스타트업을 발굴한다. 퍼스트CVC가 시장조사업체의 데이터를 자체 분석한 결과 일본의 스타트업 투자의 32%는 대기업 CVC로부터 나왔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미쓰비시상사, 미쓰이물산, 소니그룹 등 일본 굴지의 대기업을 포함한 270여 개 CVC가 모인 퍼스트CVC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원하는 일본 대기업 CVC들이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전 세계 스타트업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 8월에는 유럽의 스타트업과 만났고, 이날 L-CAMP JAPAN 행사에선 롯데벤처스가 선정한 11개 한국 스타트업이 퍼스트CVC 회원사 소속 관계자 172명에게 자사 사업을 설명했다. 일례로 자율주행 로봇 배달 서비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뉴빌리티’는 로봇 산업이 앞선 일본 기업과 제휴해 다양한 실증 실험을 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야마다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이 일본 CVC와 만나는 자리가 극히 드문데 매우 특별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스타트업은 평소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일본 대기업과 접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일본 대기업은 관심 있는 신사업 분야의 제휴 상대를 발굴할 수 있어 서로에 ‘윈윈’”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스타트업의 특징으로는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구상하고, 자금 조달도 세계 각지에서 이뤄낸다는 점을 꼽았다. 야마다 대표는 “전 세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한 싱가포르 VC 대표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한국 스타트업 대표들이 세계 곳곳에서 자금을 조달하려고 먼저 접촉해 오기 때문에 일본 스타트업보다 먼저 면담한다고 했다”고 과거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정작 가까운 일본에는 오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야마다 대표는 “일본 대기업은 풍부한 자금을 갖고 있고, 언제든 좋은 기회가 있다면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한국 스타트업과 일본 대기업이 더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