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17세기 이탈리아의 바로크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 추정)의 '메데이아'다. 그리스 신화의 인물 메데이아가 자신을 배신한 남편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예리한 단도를 치켜들고 그의 핏줄을 이은 자식을 죽이려고 하는 끔찍한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메데이아는 ‘자식을 죽인 어머니’의 아이콘 같은 존재다.
이유는 다르지만, 현실 속에도 메데이아들이 있다. 얼마 전 영아 시신을 냉동고에 유기한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줬다. 이를 계기로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을 전수조사하면서, 부모에 의한 영아 살해 사례들이 속속 드러났다. 태어나 1년이 안 된 젖먹이 아기를 고의로 살해한 영아 살해뿐만 아니라, 유아(만 1세~6세)를 학대하고 죽인 사건도 끊이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불편한 사실이지만, 영아 살해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일어났고, 때로는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진 사회적 관행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범죄로 간주되지만,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선사 시대의 낮은 인구 성장률은 질병과 식량 부족, 짐승의 습격과 함께 영아 살해(infanticide)가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한다. 특히 당시 영아 살해율은 신생아의 15~20%에 달한다고도 한다. 이런 수치는 신석기 혁명으로 식량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기 때문에 감소했으나, 신석기 시대에도 종종 농작물 생산량에 따라 입을 줄이고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영아 살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곤 했다.
고대 그리스인은 영아 살해를 야만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널리 행해졌다. 아기들은 직접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항아리에 담겨 성문 밖이나 도로에 버려졌다. 중세 기독교 사회 역시 영아 살해를 금지했으나, 당대 문헌과 법률 문서에는 아기를 살해하거나 유기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 있다.
영아 살해는 고대 아시아 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 전통문화에서는 아들만이 대를 잇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아는 덜 중요시됐다. 기근이 오면 여자 아기는 우선적으로 살해됐다. 전통 인도 사회에서는 결혼 지참금을 지불해야 했던 소녀의 부모에게 여아는 재정적 짐이었고 출생 시 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아에 대한 차별과 영아 살해는 이슬람교 이전 아라비아에서도 나타난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에서는 도시 빈민층 사이에서 부양할 가족 수를 줄이기 위해 아기 살해가 빈번했고, 파리와 런던의 기아 보호소에는 버려진 아기들로 넘쳤다. 현대에 와서는 효과적인 피임과 안전한 낙태 수술을 통해 영아 살해가 크게 줄었지만, 아직도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특히 일부 후진국에서는 관행이 용인되기도 하고 법적 조치도 엄중하게 시행되지 않고 있다.
문학 작품이나 그림에서는 일반적으로 어머니를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아이를 양육하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이상적이고 성스러운 모성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유지하려는 사회적 가치의 반영이다. 그러나 이 참혹한 범죄는 놀랍게도 남성보다 여성, 그것도 친어머니에 의해 저질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모든 여성이 아기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은 아니며, 출산 후 아이를 돌보지 않고 유기하거나 심지어 살해하는 어머니들은 항상 있었다.
왜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것일까? 어머니의 정신적 문제 외에, 아기가 혼외 자식이거나, 병이나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거나, 원치 않은 성(性)이거나,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이 되는 경우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어머니가 자식을 죽이는 행위는 우리를 무척 혼란스럽게 한다. 모성이 여성의 본능이며, 어머니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녀를 사랑하고 헌신한다는 전형적인 모성애 이데올로기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즈음에서 우리는 의문을 품게 된다. 모성은 정말 타고나는 것일까? 모성애는 종족 보존을 위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학습된 메커니즘인가. 전통 사회에서 어머니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희생하는 존재였다. 오늘날에는, 여성의 자기실현과 성취 욕구가 높아짐에 따라 좋은 어머니와 독립적 자아 사이에 고통스러운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혼과 출산을 당연시하지 않고, 모성 이데올로기에 거부감을 갖는 세대도 등장했다. 사회는 여전히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압박하고 모성을 요구하지만, 이들은 이런 사회적 압력에 저항한다. 여성에게 무조건적인 모성 이데올로기를 강박하는 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초저출산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영유아 살해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최근 영아 살해·유기범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형법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출생통보제가 내년부터 시행되며 보호출산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런 제도들이 과연 역사적, 사회적으로 뿌리가 깊은 영아살해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까?
법 제정 이전에,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충분한 사회적 여건과 국가의 지원, 미래사회를 위해서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의 가치를 먼저 정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초저출산 현상은 물론 영유아 살해와 유기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성 이데올로기에만 의존하기엔 역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