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원작 전성시대, 이대로 괜찮을까

입력
2023.10.13 23:30
지나치게 많은 웹툰 원작 드라마들…커지는 식상함
공개 앞둔 '이두나!'·'운수 오진 날'

웹툰 원작 전성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드라마들이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을 내세우며 만화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왔다. 문제는 이러한 작품들이 안방극장에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현재 방영 중인 SBS '국민사형투표', MBC '오늘도 사랑스럽개'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최근 큰 사랑을 받은 디즈니+ '무빙', 넷플릭스 '마스크걸' 또한 만화로 먼저 대중을 만난 바 있다. 공개를 앞두고 있는 작품 중에도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ENA '낮에 뜨는 달', 넷플릭스 '이두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티빙 '운수 오진 날', 디즈니+ '비질란테' 등이다. 안방극장에서 웹툰이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방송국은 물론, OTT까지 드라마들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탄탄한 스토리가 필수가 됐다. 인기 웹툰들은 일찍이 대중의 입맛을 충족시킨 작품들이기에 영상화 됐을 때도 좋은 반응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만화가 갖고 있던 화제성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는 부분도 장점이다. 웹툰을 재밌게 본 이라면 드라마화된 작품에도 호기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2014년 tvN '미생'이 주목받은 이후로 수많은 창작자들이 웹툰 기반 작품의 제작에 뛰어들었다.

물론 웹툰의 드라마화가 늘 쉬운 것은 아니다. 주인공과 싱크로율이 맞는 배우를 찾아 캐스팅해야 하는 데다가 만화적 표현을 어색하지 않도록 변형해야 한다. '무빙' 각본에 참여한 강풀 작가는 "만화는 말풍선에 대사가 있지 않나. 그래서 문어체더라. 말풍선의 문어체는 괜찮은데 배우들이 발음했을 때는 문제가 생긴다. 배우들도 현장에서 당황했을 거다. 우리는 평소에 '다나까' 체를 잘 안 쓰지 않나. 만화 대사와 발화할 때의 대사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주인공의 말투가 문어체 느낌을 주는 순간 시청자들은 오글거림을 느낀다. 드라마 창작자들은 만화를 영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CG 등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웹툰을 기반으로 하는 드라마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만화가 역주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측은 "웹툰 '무빙'은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공개와 동시에 카카오페이지 조회수 1위를 꿰찬 것을 시작으로,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조회수 및 매출 상승 속도도 점차 빨라지는 추세다. 방영 전월인 7월 대비 8월 한 달 총매출은 11배 상승했으며 (카카오페이지+카카오웹툰 합산), 방영 전주와 비교해 8월 한 달 일평균 기준으로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웹툰에서 조회수는 각 22배, 9배, 매출은 각 12배, 8배가량 상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웹툰 원작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 문제다. 웹툰 마니아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드라마들이 끝없이 등장하고 있다. 식상함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K-콘텐츠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데도 이들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이야기를 구현하는데 에너지를 사용하는 중이라는 점이 아쉬움을 자아낸다.

K-콘텐츠의 새 역사를 쓴 '오징어 게임'은 원작 없는 작품이었다. 황동혁 감독은 2008년부터 '오징어 게임'을 구상했고 6개의 이가 빠질 정도로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황 감독의 머릿속에서 나온 독창적인 이야기이고 큰 노력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게 된 덕에 그는 세계인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황 감독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에미상 감독상까지 거머쥔 바 있다. 많은 관계자들이 황 감독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면서 그를 추켜 세웠다.

물론 웹툰 원작 드라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드라마들은 만화 속 이야기만 잘 담아내도 재밌고 높은 화제성까지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웹툰 원작 드라마가 지나칠 만큼 많다는 점이 아쉽다. K-콘텐츠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 속, 그에 걸맞은 독창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창작자들의 책임이 아닐까. 재미도 화제성도 보장되지 않지만 기꺼이 모험을 감수하는 창작자들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정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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