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영재는 수학만 월반... '개별화'와 '사회성’까지 잡는 해외 영재교육

입력
2023.10.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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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미로를 헤매다] ④선진국 영재교육은
공교육 틀 안에서 개별적인 심화과정 제공

편집자주

사람들은 ‘천재 신화’에 열광하죠. 뉴스엔 IQ가 200에 가깝고 초등학교도 가기 전 미적분을 푼다는 어린 영재들이 월반을 거듭해 빨리 대학에 입학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하지만 이들이 뛰어난 학자로 자라났다는 해피엔딩을 접하긴 어렵습니다. 이 나라에서 어린 영재들이 언제나 좌절하고야 마는 이유는 뭘까요? 영재를 키우지 못하는 한국의 영재교육, 우리에겐 왜 항상 새드엔딩만이 익숙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일보가 한국 영재교육의 현주소를 들여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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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영재 학원→영재원·월반→영재학교→국내 명문대.

학원에서 기반을 다지고 조기진학으로 속도를 내는 한국형 영재의 전형적인 '테크트리'다. 이런 시스템이 어린 영재를 부적응(중도 이탈)으로 이끌고 사교육을 부추기는 등의 부작용을 드러내면서, 영재교육의 새 돌파구 찾을 때가 됐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 호주, 이스라엘 등 영재교육에서 성과를 낸 주요 선진국 사례를 보면, 공교육 내에서 영재들을 위한 개별화 교육을 제공하고, 학력·사회성·정서발달을 동시에 잡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양적 성장 이뤘지만...

이스라엘은 교육부에 영재교육과를 설치하고 초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영재 판별 시험을 실시한다. 영재교육 대상자로 선정된 상위 3% 학생은 또래 학생들과 학교를 다니고, 지역에 분산된 영재교육센터(59개)나 영재학급(45개)에서 별도 수업을 받는다. 호주 역시 초등학교 4학년을 대상으로 교육부 주관 영재선발시험이 실시되는데, 영재로 판별되면 일반영재학급이 있는 77개 학교에서 2년 간 특별 교육을 받는다.

물론 제도나 물량 측면에서만 본다면, 한국도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23년 전 영재교육진흥법을 마련해 국가 차원의 영재 지원을 명문화 했고, 교육부가 5년 마다 '영재교육진흥종합계획'을 수립하며 전략을 짜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에 운영되는 영재교육기관은 1,486개(과학고 포함시)로, 교육대상자는 총 7만 2,518명에 달한다. 담당교사도 1만8,340명이나 된다.

한국이 부족한 부분은 내용 측면이다. 대학 입시에 얽매인 한국 영재들은 학업에 흥미를 잃거나 정서적 어려움을 겪지만, 제도적으로 이걸 쉽게 해결하지 못한다. 반면 주요 선진국은 일찌감치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위해 ①융통성 있는 공교육 내 개별 교육 ②사회정서 발달 프로그램 구축 ③외부 전문가 멘토링에 집중해왔다. 예컨대 미국 영재들은 전문가들과 함께 팀을 이뤄 개별 교육계획을 작성하고 개개인에 맞는 심화 공교육을 제공 받는다. 적응하지 못하는 영재들을 위해선 1년에 한 번씩 계획을 수정하는 과정도 필수적으로 거친다. 또 버지니아주 메리 볼드윈 대학은 영재교육 관련 학위과정(Education in Gifted Education)을 개설하면서, 학교 차원에서 어린 영재들을 조기선발하고 장기적으로 관리해 경쟁과 압박에서 분리시키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개별화 교육의 성공 사례

실제로 이런 공교육 내 개별화 교육은 여러 성공 사례를 낳았다. 미국인 수학천재 레나드 응 교수가 대표적이다. 1976년생 응은 유년시절에 수학 분야에 두각을 보였고 존스 홉킨스 대학 수학고도영재프로그램(SMPY)에 등록해, 수학 속진교육을 만든 줄리안 스탠리 교수의 개인 지도를 받았다. 응은 수학 과목에 대해서만 월반을 진행하고, 체육 같은 일반 과목은 또래 학생들과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어린 영재들이 상급 학교에 조기 진학하면서 겪는 '지적 또래'와 '정서적 또래' 사이의 불일치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소한 것이다. 응은 이후 16살에 하버드대에 입학한 뒤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듀크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호주인 테렌스 타오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1975년생인 그 역시 어린 시절 수학에서 영재성을 보여 뉴사우스웨일스대학 영재교육센터를 운영하는 미라카 그로스 교수에게 멘토링을 받았다. 응과 마찬가지로 공교육 안에서 과목에 따라 수준별 수업을 받은 타오는 21살에 박사학위를 취득해 현재 캘리포니아대(UCLA) 수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린-타오 정리'로 2006년 31세의 나이로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기도 했다.

영재들이 소수 학교에 모여 대학 입시를 두고 경쟁하는 분위기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초기부터 맞춤형 교육이 이뤄지다보니, 아이들도 대입에 매몰되기보단 평생 탐구 분야를 찾는 일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류지영 카이스트 과학영재교육연구원 영재정책센터장은 "(선진국에선) 경직되지 않은 공교육이 영재성을 보인 아이들과 전문가를 매칭해주고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문화"라며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대학 진학에 압박을 느끼기보다는 그냥 편하게 집 근처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교육부도 올해 3월 발표한 '제5차 영재교육진흥종합계획'에서 영재교육 방향성을 전면 수정했다. 개인의 영재성과 특성에 적합한 맞춤형 교육을 공교육 범위 안에서 제공한다는 취지다. 다만 아직 계획단계에 머무는 상황이라 실제 구현이 가능한지는 미지수다. 송인섭 전 한국영재교육학회장은 "공교육 속 개별화 교육의 필요성은 항상 논의됐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시스템 정립을 위해 꾸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서현 기자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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