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의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이다. 하원 다수당인 야당 공화당 내에서 의장 후보 선정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을 돕는 일이 시급하다는 데 초당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의장 대행에게 예외적으로 예산안 처리 권한을 부여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저녁 공화당은 하원의장 후보자를 정하기 위해 비공개 총회를 열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하원 전체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가 확실해 보이는 후보를 낙점하지 못한 것이다. 여야 대립이 첨예한 최근 분위기상 집권당이자 하원 소수당인 민주당 의원 212명 전원이 반대표를 던질 공산이 크다는 게 공화당의 우려다. 현재 미 하원은 전체 435석 중 2석이 공석이라 하원의장에 오르려면 217표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공화당 의원 221명 대다수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도 공화당 후보 확정은 요원해 보인다고 NYT는 전했다. 이날 후보 정견 발표를 마친 뒤 11일 오전까지 단일 후보를 선출하고 같은 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의장 선거를 진행하려 했던 당초 구상과 달리, 당분간은 어수선한 당내 상황이 지속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토머스 매시 의원은 11일 신임 하원의장 선출 가능성에 대해 “2%가량일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한 공화당 후보는 스티브 스컬리스 하원 원내대표,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이다. 여기에다 공화당 강경파 8명과 민주당의 사실상 공조로 축출된 케빈 매카시 전 의장을 여전히 지지하는 세력도 있어 경선 구도는 3파전 양상이다. 스컬리스 원내대표가 중도 우파와 경합 지역구 의원들의 지지를, 조던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다양한 보수 계파 의원들의 지지를 각각 받고 있다. 그러나 우열은 확연하지 않다고 NBC방송은 보도했다.
극우 성향인 마조리 테일러 그린 의원 등은 매카시 전 의장 재추천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 그에게 반기를 든 맷 게이츠 의원 등 극우 강경파가 호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하원은 신임 의장을 조속히 뽑아야 한다는 압박에 처해 있다.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업무 중단)을 막으려면 내달 17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데, 의장 공석 상태에선 불가능하다. 또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탓에 의회 승인이 필요한 정부 긴급 자금 수요마저 생겼다.
워낙 특수한 상황인 만큼, ‘정식 의장 선출 관리’ 정도로 역할이 제한된 하원의장 대행에게 ‘법안 처리 권한’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데이비드 조이스 공화당 의원이 “미국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임시 하원의장에게 결정권이 필요하다”며 의장 대행 권한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초당적인 이스라엘 지원 결의안이 발의됐고, 조시 커타이머 민주당 의원과 클라우디아 테니 공화당 의원이 10일 이스라엘 방공망인 ‘아이언돔’의 보강에 필요한 20억 달러(약 2조7,000억 원) 예산안을 하원에 제출한 상태다. 예산안 발의 권한은 하원에만 있다.
패트릭 맥헨리 의장 대행도 의지가 없지 않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그는 10일 이스라엘 지원 일정을 묻는 질문에 “우리가 정부로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의장 공백 중에도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폴리티코는 “전례 없는 상황에서 임시 하원의장 권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실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