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밀 자급률을 끌어올리겠다던 정부가 국산 밀 전용 제분시설 설치 등 기반 확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산 밀가루 사용 확대의 전제 조건인 품질 개선과 가격경쟁력 확보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농림축산식품부 내년 예산안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국산 밀 육성‧소비 확대를 위한 예산 94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국산 밀 전용 제분시설 설치 사업 90억 원과 밀·콩 등 식량작물 소비기반 구축 사업 4억 원이 대상이다. 4월 ‘2023~2027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에서 밀 자급률을 2027년까지 8.0%로 끌어올리겠다던 목표를 제시한 것과 정반대 예산을 편성한 것이다.
밀 자급률을 높이려면 재배면적 확대와 함께 국산 밀 처리시설 구축, 소비기반 확충이 필수적이지만 정부 정책은 재배면적을 늘리는 데 집중돼 있다. 그렇다 보니 2016년엔 초과 생산된 밀 1만 톤을 소주 원료로 사용하도록 특별 처분했고, 2019년에는 국산 밀 수매제도를 35년 만에 부활시켜 밀 1만 톤을 시장격리했다. “군‧학교 급식 등 먹거리 공공시장에 쓰이는 밀을 국산으로 전환, 제면‧제과‧제빵에서 국산 밀 사용 확대 등 수요를 확대해야 한다”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제언이 무색할 정도다.
국산 밀가루의 가격경쟁력을 뒷받침할 전용 제분시설 확충도 요원해졌다. 제분공장 규모‧시설에 따라 밀 원료곡 40㎏당 제분비는 3,520~6,285원으로 2,765원가량 차이가 난다. 현재 대기업 공장을 제외하고 전국에 있는 국산 밀 전용 제분시설은 1곳이다.
김 의원은 “밀 자급률 8% 달성하려면 국산 밀 공급 확대 못지않게 수요를 늘리는 일도 중요하다”며 “재배면적 늘리기에 골몰할 경우 과거 국산 밀 공급 과잉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전용 제분시설 예산은 국산 밀 생산량이 아직까진 많지 않아서 제외했고 국산 밀 소비기반 확대는 전략작물산업화지원 사업을 통해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