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왕' 네타냐후는 또 어떻게 기록될까

입력
2023.10.12 04:30
26면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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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배커(미식축구 수비수)의 체구에 각진 턱, 넓은 이목구비, 대머리를 감추려고 올려 빗은 은발의 소유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20년 11월 출간한 회고록 '약속의 땅(A Promised Land)'에서 한 해외 정치인을 이렇게 묘사한다.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칭찬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힘든, 뜻밖의 외모 '품평'을 당한 주인공.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을 선언한 베냐민 네타냐후(73) 이스라엘 총리다.

오바마는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미국 정치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네타냐후를 "목적에 부합할 때면 매력을 발산하거나 적어도 아부를 떨 줄도 아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2005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을 당시 네타냐후가 직접 찾아와 친(親)이스라엘 법안을 지지했던 일을 치켜세웠다는 과거 일화까지 공개했다.

'유대인 최고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권력욕을 정당화한 사람', '미국 정치에 빠삭해 민주당 행정부의 어떤 압박에도 주눅 들지 않는 배짱이 있는 사람'… 네타냐후가 보면 기분 나빠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모를 평가를 오바마는 꽤 여러 장에 걸쳐 늘어놨다.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둘러싸고 네타냐후와 틀어졌던 전 미국 대통령의 '비호감'과는 별개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보수의 상징 네타냐후가 미국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허를 찔린 이스라엘은 즉각 '피의 보복전'을 시작했다. 전례 없는 무장침투로 민간인들까지 인질로 잡은 극단 세력 하마스의 비인도적 공격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할 수 없다. 하지만 압도적 우위의 무력을 가진 이스라엘의 보복이 뻔한 상황에서, 하마스가 이토록 극단적 대결에 나선 이유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의 중심엔 이스라엘 극우의 화신 네타냐후가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내부의 '정치 혼란'이란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네타냐후를 보호하기 위해 극우 연립정부가 밀어붙인 '사법부 무력화'로 이스라엘은 최악의 국론 분열 사태에 빠졌다. 정치 혼란은 안보에 구멍을 뚫었다. 네타냐후는 국가안보부 장관에 이타마르 벤그비르, 재무장관으로 베잘렐 스모트리히를 앞세우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팔레스타인에 가혹한 정책을 편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들이다.

미국도 일찌감치 네타냐후의 우경화 행보를 예의주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사법부 무력화 방침을 굽히지 않은 네타냐후를 향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바이든은 결국 '40년 절친'에 힘을 싣고 있다. "비비(네타냐후의 별명), 난 당신이 하는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오."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던 오바마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 사이에서 부지런히 가교 역할을 했던 당시 바이든 부통령의 한마디는 지금도 유효하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더 강경해질 것이다.

사욕을 앞세운 간교한 정치 지도자, 극단으로 치달은 초강경 정책이 얼마나 큰 국가의 위기를 불러오는지를 제5차 중동전쟁 길목에서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다. 피의 전쟁을 선언한 네타냐후는 미래에 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조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