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만큼 자신의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본 사람이 있을까. 장관으로 지명된 뒤 첫 출근길에 여가부 폐지와 관련, “드라마틱하게 엑시트(극적인 퇴장)하겠다”고 밝히더니 정말로 드라마틱하게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엑시트하며 청문회 역사를 새로 썼다. ‘김행랑(김행+줄행랑)’ ‘김행방불명(김행+행방불명)’ ‘김파행(김행+파행)’ 등으로 불리며 별명까지 그의 이력이 됐다.
김 후보자는 ‘자기 객관화’ 능력도 뛰어난 듯하다. 청문회에서 자신이 창업해 운영한 ‘위키트리’가 성차별적이고 선정적 기사로 조회수를 높여 돈벌이를 했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이게 대한민국 언론 현실”이라며 유체이탈 화법으로 자신의 현실을 인정했다. 주식 파킹과 배임 의혹 관련 집중 공세에는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며 항의했지만, 실제 여가부 장관으로서의 자질 검증보다 그가 수사 대상인지 여부가 더 주목을 받은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김행랑’ 논란에 기시감을 느끼는 건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불과 한 달여 전, 그의 전임자였던 김현숙 여가부 장관도 국회에서 사라졌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파행으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8월 25일 당시 김 장관은 국회에서 행방불명됐다. '김 장관 찾기'에 나선 의원들을 피해 여가부 대변인이 화장실로 도망치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김 장관은 새만금 잼버리 조기 철수를 두고 “한국의 위기 대응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시점”이라며 되레 당당해했고 잼버리 대회에서 발생한 성범죄 의혹에 대해선 “경미한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그는 결국 지난달 사퇴했다.
윤석열 정부가 기용한 두 여가부 수장의 닮은 행태는 그저 우연일까. ‘여가부 폐지’를 내세운 이 정부에서 여가부 장관 인사 파행은 예고된 참사였다. 역설적이지만 여가부가 제 역할을 못하는 동안 여가부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여가부의 소명은 다했다”라는 폐지 명분을 내세웠지만 정말 그런가. ‘부산 돌려차기 강간살인미수’, ‘서울 신림동 등산로 강간살인’, ‘인천 스토킹 살인’ 사건 등 여성 대상 흉악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흉악범죄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은 80%(2021년 기준)에 달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서 지난해 우울증 진단을 받은 여성(67만4,555명)은 남성(32만6,189명)의 2배를 넘었다.
양성 평등도 머나먼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31.1%로 회원국 중 가장 격차가 크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직장 내 여성 차별 수준을 지표화한 ‘유리천장 지수(GCI)’에서 한국은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후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꼴찌다. 저출산 위기도 심각하다.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이런 현실을 제쳐두고 여가부를 없애는 게 장관 소임이라면, 애당초 적합한 후보자가 있을리 만무하다. 정부가 인사 줄참사를 막으려면 여가부의 역할부터 되새겨야 한다. 여가부의 주요 업무로 명시된 여성의 권익증진, 청소년 지원 및 보호, 가족정책 수립, 여성·아동·청소년에 대한 폭력피해 예방 및 보호를 이끌 책임자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