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 신공법 적용 후 민원 급감… 축산악취 개선 지침 처음 시행한 당진

입력
2023.10.11 04:30
8면
악취저감 신공법, 근거자료 의무화 지침
재래식 축사가 ‘암모니아 1ppm’ 탈바꿈
성공사례 만든 당진 지침, 충남도내 전파 
분뇨로 만든 무취비료, 수익화 지원 절실

편집자주

전국 곳곳에서 '후각을 자극해 혐오감을 주는 냄새', 즉 악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취 민원은 무수히 쌓이는데 제대로 된 해법은 요원합니다. 한국일보는 16만 건에 달하는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국내 실태 및 해외 선진 악취관리현장을 살펴보고, 전문가가 제시하는 출구전략까지 담은 기획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지난달 20일 충남 당진시의 A양돈농장. 오후부터 빗줄기가 거세져 눈앞을 가렸다. 시간당 강수량은 20mm, 습도는 96%였다. 대개 습도가 60% 이상 되면 농가 근처에선 냄새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분뇨 냄새 주성분인 암모니아가 공기 중 수분과 결합해 무거워져서 널리 퍼지지 못하고 정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A농장의 축사 안팎에서 나는 분뇨 냄새는 심하지 않았다. 돼지 2,200마리가 살고 있는 축사 내 암모니아 농도는 1.47ppm. 농림축산식품부가 규정한 제한 농도(25ppm)에 한참 못 미친다. 농장 사무실 입구에는 '깨끗한 축산농장'이라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인증판도 붙어 있었다.

A농장은 2019년 9월까지만 해도 재래식 농장이었다. 완전 개방형 축사는 아니었지만 냄새는 심각했다. 당시 제기된 민원에 따라 충남보건환경연구원이 냄새를 측정한 결과 기준치를 초과해 악취 판정이 나왔다. 그랬던 A농장이 확 바뀐 데는 악취 해결을 위해 10여 년간 묵묵히 발로 뛰어온 한 당진시 공무원의 역할이 컸다.



첫 가축분뇨 처리시설 지침, 농장을 바꾼 동력

당진은 등록 축사만 1,000개 이상으로, 축산악취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그런데도 A농장은 불과 4, 5년 전까지만 해도 악취방지법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악취배출신고 대상도 아니었다. 그러니 악취 민원이 잇따라도 지자체가 할 수 있는 건 강제력 없는 권고뿐이었다.

10년 넘게 축산악취 감시 및 개선 업무를 해 온 김준룡 당진시청 기후환경과 팀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축분뇨 배출시설 및 처리시설 설치기준' 제정을 주도했다. 수년간 농가는 물론 지역 의원들을 설득해 가며 만들어 2020년 2월 당진시가 전국 최초로 시행한 이 제도는 분뇨 냄새가 심한 가축을 사육하는 곳은 악취저감시설에 최신공법을 적용하는 걸 의무화했다. 악취를 줄였다는 근거 자료도 반드시 제출토록 했다. 아울러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설계 역시 의무로 규정했다.

당진시는 축산농가가 이 지침에 따라 축사를 현대화하면 축사 면적을 30%늘릴 수 있도록 조례까지 바꿨다. 김 팀장은 "그러면 가축 사육 면적이 15% 넓어져 동물복지에도 도움 된다"고 했다. 이 지침은 충남도 전체로 전파됐고, 현재 도 내 14개 지자체가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당진시는 파악하고 있다.

A농장은 이 조례의 첫 수혜자가 됐다. 현대화 공사 이후 외관부터 달라졌다. 밀폐식이고 냄새도 안 나니 겉으로 봐서는 축사임을 알아채기 어렵다. 돼지 분뇨는 배설 직후 축사 하부의 관을 통해 액비(액화비료) 순환 시스템으로 옮겨진다. A농장주 이모씨는 "미생물에 의해 분뇨가 희석되고 악취물질은 분해된다. 최종적으론 냄새가 사라지고 액화비료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순환 중인 시스템에 담긴 분뇨는 말 그대로 배설물 색깔이었으나 냄새는 거의 없었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악취 관리 선진국에선 가축의 대변과 소변을 분리해 암모니아 생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악취를 저감한다. 이와 달리 A농장 시스템은 분리 과정 없이 대소변에 곧바로 미생물을 처리해 악취 물질을 분해하는 데 중점을 둔다. 축사 바로 옆에도 주택이 있는 한국에는 A농장 방식이 더 적합하다는 게 당진시 설명이다. 김 팀장은 "순환 시스템에서 제조된 액화비료는 냄새가 안 난다"고 했다.


"자부담 20억원... 농가 부담 줄일 지원책 필요"

A농장이 있는 마을의 악취 민원은 급감했다. 지난 5년여간 집계된 악취 민원 총 21건 중 2022년 이후 제기된 것은 단 2건이었다. 축사 현대화 이후 A농장은 공공이 주관하는 양돈사업에 지원할 때 가산점도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축사 공사에 든 비용은 약 24억 원. 이 중 당진시가 지원해 준 건 약 2억 원에 그쳤고, 나머지는 자부담이었다. 이씨는 "이제 농장은 공사비를 융자해 준 축산업협동조합 소유나 마찬가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당진시 관계자는 "자체 재정만으로는 지원에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당진을 지역구로 둔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축산업 선진국 네덜란드는 악취 저감 비율에 따라 정량적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눈에 띄는 지원책이 있지만, 우리 축산농가는 거액을 대출받아 악취저감시설을 달아도 이를 보전할 직접적인 방법이 없다"면서 "분뇨로 냄새 없는 액화비료를 제조했다면, 국내 판매나 수출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농림부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랙티브] 전국 악취 지도 '우리동네 악취, 괜찮을까?'

※ 한국일보는 2018년 1월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전국 모든 기초지자체 및 세종시가 접수한 악취의심지역 민원 12만6,689건과 이 민원에 대응해 냄새의 정도를 공식적으로 실측한 데이터 3만3,125건을 집계해 분석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내가 사는 곳의 쾌적함을 얼마나 책임지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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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윤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