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로 국제 유가가 3% 이상 뛰어올랐다. 석유가 풍부한 중동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국내 석유‧가스 현황 점검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번 충돌로 인해 유가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올겨울 에너지 요금 정책에 끼칠 영향이 큰 만큼 상황을 꼼꼼하게 살펴 대책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장중 5%까지 뛰었다가 9일 오후 4시 30분(한국 시간) 현재 3.1% 오른 배럴당 85.36달러 안팎에서 거래 중이다. 런던ICE 선물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역시 장중 5%까지 뛰었다 2.77%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세로 석유·가스 수급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자 산업부는 강경성 2차관 주재로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와 긴급 상황점검 회의를 열고 "유가 상승세 지속 여부는 이스라엘 주변 산유국의 대응 등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분쟁 지역에서 국내로 원유·가스를 들여오는 주요 경로인 호르무즈해협과 떨어져 있는 만큼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도입에 당장 차질은 없다고도 덧붙였다. 석유공사는 120일 쓸 수 있는 9,700만 배럴의 석유를 쌓아두고 있다.
중동‧에너지 경제전문가들 역시 "유가의 흐름은 중동 정세를 좀 더 봐야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중동 산유국들이 원유 감산 등에 나설지 판단하기 이르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산유국이 아니라서 원유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거란 예측도 나온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이란이 개입해서 중동의 갈등이 이어져도 사우디아라비아나 미국이 원유 생산량을 유지하면 오름폭은 좁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세계 경제 둔화 우려 속에 국제 유가가 내림세로 돌아선 것도 유가 상승세가 힘을 받지 못할 거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전쟁의 양상이 미국-이란의 대리전으로 번지면 유가는 언제든 뛰어오를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4분기(10~12월) 에너지 가격을 올릴지를 놓고 혼란이 예상된다.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9월 국내 소비자물가지수가 5개월 만에 최대치(3.7%)로 올랐지만 에너지‧식료품 비용을 뺀 근원물가지수는 8월(3.3%)과 같아 안정적"이라며 "유가가 더 오르면 물가 상승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전기 요금을 올리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에너지전문가인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 학장은 "올겨울 에너지 수요를 감안하면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사채발행 한도 소진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며 "유류세 인하로 한전을 지원할 재정 여력이 모자라 기름값이 오르면 요금 현실화 말고는 답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수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거라 봤다. 전체 수출 시장에서 중동의 비중이 작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난해 9, 10월 들여온 원유 가격은 각각 배럴당 105달러, 100.92달러로 지금보다 높았다.
다만 전쟁이 중동 주요 지역으로 확대돼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면 큰일이다. 김태환 실장은 "우리나라 원유의 67%, 가스의 37%를 중동에서 들여올 때 모두 이곳을 지난다"며 "(이 바닷길이 막히면) 에너지 안보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