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참사 때마다 방재안전 공무원 확충을 강조한 정부 방침은 헛구호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과중과 열악한 처우에 신규 인력 절반이 그만두는 등 방재안전직렬 붕괴가 가시화됐지만, 정부는 승진 가산점과 같은 헛발질 대책만 내놓고 있다. 정부의 안일한 땜질 처방이 재난대응 공백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9일 한국일보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최근 3년간 재난 담당 공무원 초과근무 실태 전수조사’ 현황을 보면, 2021~2023년 전국 재난 담당 공무원의 월평균 초과근무시간(45.2시간)은 일반 공무원(30.8시간)의 1.5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중 호우나 태풍이 몰린 올해 여름(7~8월)으로 시기를 좁혀 보면 차이는 더욱 커진다. 충북 재난 담당 공무원의 월평균 초과근무시간은 91시간으로 일반직(44시간)의 2.1배에 달했다. 경북‧전남의 경우도 2.2배에 달했고, 울산(1.9배), 경기‧경남(1.8배)도 2배에 육박했다. 전체 평균도 1.6배다. 재난 담당 공무원은 방재안전직렬과 각 지방자치단체 상황에 따라 재난 업무를 맡고 있는 일반 공무원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받는 처우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올여름 월평균 91시간을 초과로 일한 충북 재난 담당 공무원(9급)이 받은 월급과 초과수당을 전체 근무시간으로 나누면 시급 6,500원에 그친다. 비상근무수당(1일 8,000원‧월 최대 8만 원)을 더해도 올해 최저임금 시간급(9,620원)에 한참 못 미친다.
열악한 처우 외에도 재난 담당이 공무원 사회에서 대표적 기피 조직으로 꼽히는 이유는 많다.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겨 평소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평상시 재난 예방 범위는 방대하고 재난 발생 시 비상근무 등 업무는 과다하다. 무엇보다 꼬리 자르기 식으로 재난 담당 공무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은 기피 1순위로 부상한 요인이 됐다. "재난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빨간줄(형사 처벌)은 무조건 각오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 관련해 수사를 받게 된 공무원 34명 중 대부분은 재난 담당 공무원들이었다.
재난 업무를 맡았던 일반직은 다른 부서로 ‘탈출’할 수 있지만, 타 부서 업무를 해볼 기회조차 없는 방재안전직은 그만두는 길 외엔 방도가 없다. 방재안전직 채용 인원 대비 퇴직자 비율은 2017년 17.4%에서 2021년 48.6%로 급증하는 추세다. 재난 관련 부서에 장기 재직을 유도해 경험‧전문성을 쌓도록 하겠다던 2013년 방재안전직렬 도입 취지는 무색해지고, 일반 행정직·기능직들의 재난부서행을 면하는 '공무원 사회의 하도급'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현재 전국 지자체 공무원 30여만 명 중 해당 직렬도 791명에 불과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경북 포항‧경주 지진, 2022년 폭우‧이태원 참사,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방재안전직 채용을 확대하겠다고 했으나, 제대로 이뤄진 건 없다.
행정안전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6월 지방공무원 임용령을 개정해 재난‧안전관리 업무에 근무한 경우 승진 시 가산점을 부여하도록 했다. 그러나 방재안전직렬 이탈을 막을 근본 방안 없는 승진 가산점 제도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초과수당 인상도 머나먼 이야기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초과수당을 올리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임 의원은 “재난안전 부서 기피 분위기가 공고해질수록 그 피해는 일반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인력충원과 수당 현실화 등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