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교란 위험 없는 파충류만 기를 수 있게 한다는데... 어떤 논의 이뤄지고 있나

입력
2023.10.10 11:00
환경부, 2025년 백색목록 제도 도입 목표 
수입 가장 많은 야생동물 파충류부터 연구


지난 8월 서울 지하철 3호선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역 인근과 광진구 화양동 주택 밀집가에서 검은색 킹스네이크가 1마리씩 발견됐다. 7월에는 충남 홍성군과 경북 영주시에서 각각 1m와 60~70㎝ 크기의 사바나왕도마뱀이 나타났다. 이외에 올해에만 그물무늬비단뱀, 호스필드육지거북, 레오파드육지거북, 늑대거북 등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 동물들은 모두 국내에 서식하지 않는 외래종으로 반려동물로 키워지다 유기된 것으로 추정됐다.

동물의 국가 간 거래와 반려동물 인구 증가로 유기된 야생동물이 늘고 있는 가운데 생태계 교란이나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2025년 야생동물 백색목록 제도의 도입을 앞두고 파충류부터 연구용역에 들어갔다. 백색목록이란 특정 야생동물 종의 목록을 작성해 이에 포함된 종을 제외한 다른 모든 야생동물 종의 수입, 판매, 개인소유를 금지하는 제도다.

9일 환경부에 따르면 2011~2019년 수입된 살아 있는 야생동물은 총 350만여 마리로, 연평균 39만여 마리에 달한다. 이 가운데 파충류가 연평균 약 28만 마리로 가장 많고, 양서류, 포유류, 조류 순으로 수입되고 있다. 특히 파충류의 경우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사이테스)을 적용받는 종을 포함해 860여 종에 달한다는 것이 한국양서파충류협회의 추산이다. 주로 크리스티드 게코 등 도마뱀목, 파이톤(비단뱀) 등 뱀목, 페인티트 터틀 등 거북목을 기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은 지난 4월 연구용역을 통해 파충류 백색목록 대상 종과 이의 등재 기준 설정에 들어갔다. 6월 말에는 '파충류 백색목록 마련을 위한 1차 이해관계자 간담회'를 가졌다. 자원관은 수입되는 종 가운데 사이테스 등으로 이미 법적 관리를 받고 있는 종을 제외한 430여 종을 평가 대상종으로 선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또 안전성, 생태계 위해성 등의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백색목록 대상 종과 평가 기준을 놓고 이해관계자들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연구진은 당초 대상 종과 관련, 국내 이미 수입된 종만 평가 대상에 포함시키려 했지만 업계에서는 국내에 들어오지는 않았더라도 해외에서 이미 유통되고 있는 종까지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평가 기준에 동물 복지와 관련된 내용 포함 여부를 두고 의견이 좁혀지지 못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태원 한국양서파충류협회장은 "백색목록 제도 도입은 사육자들과 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며 "백색목록을 강행한다면 연구진들은 백색목록 선정 후보종과 누락된 종의 납득할 수 있는 기준과 필요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동물단체들은 백색목록 제도의 취지대로 사람의 안전, 생태계 위협을 줄이기 위해서는 평가 기준이 엄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는 이미 백색목록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며 "허술한 기준이라면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여 제도를 시행하는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립생물자원관 측은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내 미도입종이면서 해외에서는 유통중인 종을 평가 대상에 포함시킬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논의를 거쳐 평가 기준도 만들겠다"고 밝혔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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