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멧돼지가 민가나 도심에 출몰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수확을 앞둔 농사를 망치거나 전염병을 확산시킬 우려도 크다. 전문가들은 멧돼지와 마주치면 뛰거나 소리치지 말고 조용히 피하라고 조언한다.
멧돼지 출몰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5일 오전 8시 45분쯤 경북 청도군 한 주택 마당에 나타난 멧돼지의 공격으로 60대 여성이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쳤다. 멧돼지는 인근 야산으로 달아났다.
전날(4일)에는 대구 도심에 세 차례나 멧돼지가 나타났다. 오전 11시쯤 수성구 중동의 한 어린이집 인근에 나타난 새끼 멧돼지와 오후 6시쯤 남구 봉덕동 경일여고 운동장 인근에 나타난 멧돼지가 잇따라 사살됐다. 오후 8시 30분쯤 수성구 중동교와 상동교 사이에 모습을 보인 멧돼지는 야산으로 도망갔다.
경기도에서도 지난 2일 정오쯤 몸무게 100㎏에 달하는 멧돼지가 의정부경찰서 뒷문을 통해 난입하자 경찰이 실탄을 쏴 멧돼지를 사살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2명이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부산에서도 1일과 지난달 29일 도심 주택가에 멧돼지가 나타나 각각 사살됐다.
전국의 멧돼지 개체수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부산의 경우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유해조수 기동포획단에 포획된 멧돼지가 557마리에 달했다. 지난해 1년 동안 포획된 멧돼지 수(563마리)에 이미 육박했다.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이 지난해 1년 동안 전국 17개 시도 야생멧돼지 서식밀도를 조사해 4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당 평균 1.1마리였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이후 적극적인 포획으로 2019년(2.3마리/㎢) 이후 크게 줄었다는 게 환경부 분석이지만, 목표치(0.7마리/㎢)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황이다. 여전히 멧돼지 개체수가 많아 민가까지 내려와 피해를 주는 일이 빈발하고 있는 셈이다.
멧돼지가 도심지 주택가에 자주 출몰하는 가장 큰 이유는 먹이 때문이다. 인근 서식지에 도토리, 밤 등 먹이가 부족하자 가을 수확철 먹이를 찾아 내려오는 것이다. 또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지는 짝짓기를 앞두고 영역다툼에서 밀려난 멧돼지들이 떠돌아다니다 먹이를 찾아 도심으로 내려온다는 분석도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겨울 월동에 대비해 에너지를 비축하려는 멧돼지의 특성상 먹잇감을 찾기 위해 멧돼지가 도심까지 내려올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5년간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541억 원에 달했는데, 가장 많은 피해를 준 동물이 멧돼지였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업정책보험금융원의 ‘2018~2022년 야생동물별 농작물 피해액’ 자료에 따르면 멧돼지는 330억여 원 피해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멧돼지 포획에 나섰다가 동료를 멧돼지로 착각하는 바람에 오인 사격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한다.
멧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옮기는 것도 걱정이다. 이 병이 발생했던 경북과 강원도 등은 겨울철(11~4월) 번식 전 야생 멧돼지 집중포획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멧돼지가 서식하는 산을 등산할 때는 주요 등산로가 아닌 곳으로는 다니지 말고, 음식물을 함부로 버리거나 남겨두어서도 안 된다고 조언한다. 또 멧돼지와 마주치면 소리를 지르거나 등을 보이며 달아나는 행동으로 멧돼지를 흥분시키지 말고, 나무나 바위 등 은폐물 뒤에 몸을 숨긴 뒤 112나 119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새끼와 함께 있는 어미 멧돼지는 공격성이 강해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