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표절'이라는 악의적 범죄

입력
2023.10.08 19:00
21면

편집자주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공간들과 건축물의 소개와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필자의 시선에 담아 소개한다. 건축과 도시 공간에서 유발되는 주요 이슈들과 사회문화적 의미를 통해 우리 삶과 시대의 의미도 함께 되새겨 본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피카소가 한 말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란 글도 있듯이 누구도 제로에서 시작하지 않으며 선례를 바탕으로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창조되기도 한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황야의 7인'은 일본의 '7인의 사무라이'를 모방하여 제작되었으나, 원작에 대한 경의 표현과 더불어 자체적 완성도를 통해 영화사에 족적을 남겼다. 한편 표절이란 '다른 사람의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몰래 따다 쓰는 행위'이다. 모방과는 의도부터가 다르며 상업적인 목적을 우선한 범죄이다.

이러한 표절에 대한 잣대는 건축에서도 적용된다. 이미 엇비슷한 아파트로 도시 풍경이 점령당한 우리에게 '그렇다면 아파트는 다 표절 아니냐, 건축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관용 넓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저작권법에서는 건축물과 설계도면을 건축 저작물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건축계에서 화제가 된 부산의 모 유명 카페 이야기도 그렇다. 참신한 형태와 내부공간으로 한해 무려 백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러자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울산에 입지조건, 규모, 형태, 내부 구조와 마감까지 쌍둥이 같은 건물이 등장했다. 원설계자는 건축에도 '단어', '문장', '문단'으로 부를 수 있는 요소가 있지만, 이 경우는 일부를 인용한 것이 아니라 책 전체를 베낀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연히 저작권 손해배상에 더해 철거 청구를 하였다. 이는 건축물 관련 저작권 소송 중에 최초의 철거 요청으로 타 분야의 불법 복제물을 폐기하듯이 표절 건축물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건축가의 논리였다.

표절을 요구한 건축주와 이를 너무나도 충실히 이행한 건축가는 이 카페에 대해 모르쇠로 발뺌하는 작전으로 대응해 왔다. 4년간 이어진 법정 논쟁 결과, 5,000만 원의 저작권 침해 배상과 건물 철거라는 원고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이제까지 국내 건축물 저작권 분쟁에서 미미한 경제적 배상과 사과문 정도로 표절자에게 관용적으로 마무리되던 사회적 의식에 역대급 경종을 울렸다.

한편 모방이 우리보다 더 관용을 가지는 곳도 있다. 중국 베이징의 한인타운이라 불리는 왕징에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상업 건물을 설계하고 2014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에 박차를 가하던 2013년 일이었다. 지도상 직선거리로 1,500㎞ 떨어진 충칭 도심 한 공사현장 휘장막이 걷히는 순간 각종 SNS는 이 건물 사진으로 도배가 되었다. 아직 공사 중인 자하의 건물 디자인과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설계초기 단계에서 원래 설계안이 유출되어 다른 개발업자가 원작보다 표절작을 소리 소문 없이 빠르게 완성시킨 것이었다.

이 기막힌 표절 사건은 곧 세계적 논쟁으로 비화하였고 마침내 중국 내에서 저작권을 관리하는 특허청까지 개입하게 된다. 매스컴에서도 주목하면서 매일같이 관련 뉴스가 등장하였고 어떤 결말이 날지 세간의 관심사였으나, 결과적으로 두 개발업자의 건물 분양만 제대로 홍보해준 꼴이 되었다. 부산과 울산은 서로 고객을 경쟁하는 거리에 동종 업종이 있었다면, 베이징과 충칭은 거리와 대상이 겹치지 않아 서로 반사이익을 교묘히 챙긴 사례이다. 이밖에도 중국에서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나 파리 에펠탑,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 같은 유명 건축물을 복제한 건물이 등장해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중국 정부는 도시 경관의 수준을 관리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발표한다. 건축물 복제행위 금지, 즉 주요 공공건축물과 랜드마크의 디자인 복제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는 지침을 발표하였고 더는 왕징과 같은 해프닝은 보기 어렵게 되었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으며, 사회의 문화와 기술을 반영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건물의 생김새는 건축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중요 요소가 될 수 있으나, 본질을 규정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모방과 차용에 대한 고의성과 목적성을 토대로 기존재하는 건축물보다 얼마나 나은 의미를 제시하였는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각종 생성형 AI의 활용이 빠른 속도로 확산하면서 저작권 침해와 표절 논쟁이 나날이 첨예하다. 건축계의 창의와 표절에 대한 논의도 이미 시작된 미술 분야처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조진만 건축가